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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자 못찾아 돌려드린 노점상 할머니 기탁금, 이번엔 잘 쓰일까

중앙일보

입력

순금 2kg 기탁했지만 되돌려받아

노덕춘 할머니가 기탁한 순금은 경남여고에서 경남여고 총동창회로 이전됐다. 이듬해 할머니는 기탁액을 되돌려받았다. [경남여고 총동창회 제공]

노덕춘 할머니가 기탁한 순금은 경남여고에서 경남여고 총동창회로 이전됐다. 이듬해 할머니는 기탁액을 되돌려받았다. [경남여고 총동창회 제공]

2010년, 5월 고 노덕춘 할머니는 순금 2175g을 들고 경남여고 행정실을 찾았다. 부정맥을 앓던 몸으로 노점상을 꾸려 모은 것이었다. 그 때 화폐로 따지면 1억 원 가량의 가치였다. 3개월 뒤인 2010년 8월, 경남여고는 할머니가 기탁한 순금을 경남여고 총동창회에 이전했다. 할머니 이름을 딴 '노덕춘 장학회'를 만들고 재단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총동장회로 이전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덕춘 할머니는 기탁한 순금을 이전하는 증명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면서도 '부정맥'이라는 조건을 강조했다. 할머니는 부정맥은 "심장 박동이 하늘로 올라갔다, 죽었다 흑 끊겼다 한참 있다가 살았다"라고 설명도 따로 적었다. 또 자필로 "본인은 부정맥과 협심증 복합 환자"라고도 썼다.

경남여고 총동창회는 순금을 기탁받은 뒤 할머니가 말한 장학금 수혜자를 백방으로 찾았다. 하지만 부정맥을 앓고 있는 학교 학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총동창회는 할머니에게 부정맥을 앓는 학생말고도 사정이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고 설득했지만 자신과 같은 질병인 부정맥을 앓고있는 학생을 돕고 싶다는 할머니의 마음은 확고했다. 할머니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이 없다면 기부금을 돌려주길 바랐고, 경남여고 총동창회는 2011년 12월 노덕춘 할머니에게 기부금 1억 여원을 되돌려줬다.

노덕춘 할머니, 유언장에 "유용한 곳에 써 달라"

노덕춘 할머니가 남긴 유언장. [전농1동 주민센터 제공]

노덕춘 할머니가 남긴 유언장. [전농1동 주민센터 제공]

노덕춘 할머니는 앞서 2008년 11월 계약한 상조회사에 비용을 지급하고,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은 구청 사회 담당자와 살고 있던 아파트 관리 실장과 논의해 유용한 곳에 쓰였으면 좋겠다고 유언장을 남겼다. 유언장은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에게 인증을 받았다.

할머니가 지난달 22일 돌아가신 뒤 주민센터 직원들이 아파트 관리 카드에서 유언장을 발견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할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살폈다. 할머니 부모의 호적도 살폈는데 4촌 이내 방계 혈족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주민센터가 알아보니 할머니 유산의 법정 상속인은 없었다.

할머니의 유산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고심하는 과정에서 주민센터는 서울복지재단 공익법센터에 간이 자문을 받았다.
변호사에게서 할머니가 남긴 유언장이 법적 효력이 있는 '공증'이 아닌 '인증'이어서 바로 유산을 집행 할 수 없을수도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만든 '무연고자 사망시 상속 재산처리 절차 소개' 자료에는 가정법원에서 상속재산관리인을 지정 받아 집행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권택숙 전농1동 맞춤형복지팀장은 "할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서울복지재단 공익법센터에 추가 자문을 받고, 이웃들을 위해 할머니의 유산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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