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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 주(周), 밭(田)에다 곡식 빼곡히 심어 놓은 모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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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호 22면

[한자 진면목] 周邊

가장자리, 둘레, 중심에서 떨어진 곳을 일컫는 단어가 주변(周邊)이다. 앞의 周(주)는 풀이가 다소 엇갈렸다. 그러나 대개는 위 그림처럼 밭(田·전)에다 곡식을 빼곡히 심어 놓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본다.

가 변 글자의 ?(면)은 해골 형상화 #구석진 먼 곳으로 옮김의 뜻 얻어 #둘레가 번듯해야 중심 제대로 서 #정치인들은 ‘주변’ 정리 잘해야

나중에 이 글자는 초기 중국 왕조의 이름으로 쓰인다. 그에 따라 본래의 ‘빼곡함’을 나타낼 때는 벼를 지칭하는 禾(화)를 붙여 ‘조밀하다’의 稠(조)로 분화했다고 본다. 참고로 冫(얼음 빙)이 글자에 더해지면 추위에 곡식 등이 시들어 떨어진다는 새김인 凋(조)다.

‘두루 주(周)’의 변천 모습(위)과 ‘가 변(邊)’의 초기 글자꼴.

‘두루 주(周)’의 변천 모습(위)과 ‘가 변(邊)’의 초기 글자꼴.

이후 周(주)는 다시 여러 뜻으로 갈라졌다. 우선 ‘주변’이라는 새김이다. 고대 왕조는 성곽을 중심으로 행정과 정치가 행해졌다. 곡식을 심은 곳은 당연히 그 주변이다. 식량을 제공하는 경작지는 성 둘레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을 포함해 여러 곳을 아우른다는 뜻에서 ‘두루’의 의미가, 곡식의 파종에서 수확까지의 한 주기를 뜻하는 데서 週期(주기)라는 의미까지 생겨났다. 週(주)는 곡식 등을 심고 거두는 전체 과정에 ‘움직이다’는 뜻의 辶(착)을 강조한 글자다.

다음 글자 邊(변)은 초기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주목할 글자 요소는 ‘보이지 않다’는 뜻의 臱(면)이다. 시신이 해골로 변했을 때 그 콧구멍을 가리키는 글자 요소 自(자)와 구멍을 지칭하는 穴(혈), 구석진 곳을 의미하는 方(방)의 결합이다.

시신과 해골을 이런 식으로 안치했던 중국 고대 습속 ‘촉루붕(髑髏棚)’의 습속을 반영한 글자로 볼 수 있다. 실제 주나라에 앞서 등장했던 상(商)나라 후기 수도 은허(殷墟)의 많은 무덤에서는 전쟁 포로를 잡아 목을 자른 뒤 해골만 무덤 구석에 정리해 놓은 유적이 자주 나온다.

이 臱(면)이라는 글자 요소에 ‘가다’ ‘옮기다’의 새김인 辶(착)이 붙어 邊(변)이라는 글자가 생겼다. 따라서 이 글자는 시신으로부터 해골을 분리해 구석진 곳, 또는 먼 곳으로 옮기는 뜻을 얻었다고 본다. 그로부터 얻은 새김이 역시 ‘가장자리’ ‘먼 곳’ ‘둘레’ 등이다.

이 두 글자가 들어가는 단어 조합은 퍽 많다. 둘레란 뜻의 주위(周圍), 두루 안다는 의미의 주지(周知), 일이 되도록 펴 주는 주선(周旋), 널리 돌아다니는 주유(周遊), 다 미치는 주도(周到) 등이다.

나라의 끝은 변방(邊方)과 변계(邊界), 아래를 이루는 저변(底邊), 강가와 바닷가는 강변(江邊)과 해변(海邊), 몸의 주위 신변(身邊), 구석진 자리 변우(邊隅) 등이 있다.

한결같이 ‘중심’을 이루는 곳으로부터 다소, 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나 물건 또는 경우 등을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중심’은 ‘주변’이 있어야 이뤄진다. 가장자리와 둘레가 번듯하지 않으면 그 중심은 제대로 설 수 없는 법이다.

건물의 경우도 그렇다. 건축 둘레가 어그러지면 집채는 제대로 설 수가 없다. 내 주변, 신변이 깨끗해야 공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어그러짐이 없다. 요즘 신변의 여러 문제로 물의를 빚는 우리 정치인들이 특히 새겨야 할 단어가 ‘주변’이 아닐 수 없다.

하영삼·유광종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장·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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