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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대학가 귀향버스…"명절에 고향 안 가요. 아니, 못 가요"

중앙일보

입력

대학 중앙도서관. [연합뉴스]

대학 중앙도서관. [연합뉴스]

대학가에서 ‘명절 귀향버스’가 사라지고 있다. 귀향버스를 타려는 학생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명절 귀향버스는 주로 수도권 지역의 대학교에서 지방에서 온 학생들을 위해 학생회나 학생복지위원회 차원에서 마련하는 사업이다. 학기 중인 추석에 비해 방학 기간 중인 설 귀향 버스는 비교적 수요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과 고향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일부 대학교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번 설 경희대학교에서 출발하기로 했던 귀향버스 전 노선이 운행 취소됐다. 경희대 생활협동조합은 지난 29일 "전 노선 접수자가 15명 미만이라 운행이 취소됐다"고 공지했다.[사진 페이스북 캡쳐]

이번 설 경희대학교에서 출발하기로 했던 귀향버스 전 노선이 운행 취소됐다. 경희대 생활협동조합은 지난 29일 "전 노선 접수자가 15명 미만이라 운행이 취소됐다"고 공지했다.[사진 페이스북 캡쳐]

지난달 29일 경희대학교에서는 부산, 광주, 대구로 향하는 설 귀향버스가 모두 취소됐다. 버스 운행을 위해서는 최소 15명의 신청자가 모여야 하는데, 3개 노선 모두 신청자가 10명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경희대학교 생활협동조합 관계자는 “45인승 버스를 빌릴 계획이었는데 신청자가 너무 적었다”고 말했다. 경희대는 작년까지 설 귀향 버스가 운행됐던 몇 안 되는 학교 중 하나다.

건국대학교는 이번 설부터 귀향 버스 규모를 크게 줄였다. 지난해만 해도 건국대에서는 대전-부산, 청주-울산, 전주-광주, 대구-포항, 진주-창원 5개 노선을 이용할 수 있었다. 건국대 학생복지위원회는 이번 설을 앞두고 귀향버스 수요조사를 한 끝에 2개 노선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마저도 한 대당 신청자가 10명에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건국대학교는 지난해 12월 설 귀향버스 수요조사를 거쳐 5개였던 노선을 2개로 축소했다.[사진 건국대학교 학생복지위원회 페이스북]

건국대학교는 지난해 12월 설 귀향버스 수요조사를 거쳐 5개였던 노선을 2개로 축소했다.[사진 건국대학교 학생복지위원회 페이스북]

한편 국민대학교는 일찌감치 설 귀향버스를 폐지했다. 국민대 총학생회는 지난 2017년부터 설은 물론이고 추석 귀향 버스도 없앴다. 이준배 국민대 총학생회장은 “귀향버스 사업이 적자가 너무 많이 나다 보니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귀향버스를 찾지 않게 된 주된 이유는 고향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었기 때문이다. 당장 넘어야 할 취업의 문턱에 고향에 내려갈 시간이 없거나, 취업하지 못한 채 고향에서 받는 눈치 또한 피하고 싶은 일이다.

윤호연(25·인하대)씨는 “설 연휴에 더 열심히 공부해 자격증을 취득할 것”이라며 “고향에 다녀오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인 그에게 왕복 4~5시간을 거리에서 보내는 건 작지 않은 부담이다. 윤씨는 또 “고향에 가더라도 친척 어른들이 ‘취업은 어떡할 거냐’는 질문을 하신다”며 “지금처럼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명절에 고향에는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성균관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상준(25)씨는 “취업 시험이 이번 달(2월)에 잡혀 있어 설에도 공부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시험을 눈앞에 둔 이씨는 설 연휴에도 학교 도서관을 찾을 예정이다. 그는 “명절에 고향에 간다면 취업을 한 뒤 가게 될 것 같다”며 “고향에는 자랑스럽게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또 “올 추석에는 꼭 고향에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경제적 이유로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양대 재학생 이모(23)씨는 “영화관은 연휴가 극성수기라 아르바이트생들이 바빠진다”고 말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연휴에 꼭 출근해야 하는 아르바이트 근무일에 빠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2일부터 7일까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성인남녀 19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설 친지모임에 참석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3명 중 1명이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모임에 불참하는 이유는 “현재 내 상황이 초라해서”가 전체 응답자의 36.1%로 1위를 차지했고 “취업, 이직 준비 때문에”가 31.8%로 뒤를 이었다.
알바몬이 올해 1월 25일부터 30일까지 아르바이트생 18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68.3%가 “설 연휴에도 정상근무한다”고 답했다.

임성빈·이가영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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