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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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조급하게 입안된 신도시 계획이 급기야 국회의 재검토 촉구결의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고있다.
신도시 계획은 수립과정부터가 너무 응급·즉흥적이었다. 아파트값 폭등·투기를 당장 잡아야한다는 강박감에 밀려 이것저것 따질 여유없이 서둘렀다. 서울 주민이 들어가 살만한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물량을 빠른 시일 안에 지어 공급하겠다는 발표 자체가 중요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도시가 어떤 성격의 도시인지, 주거의 규모와 형태는 어떻게 구성·배분하겠다는 것인지, 서울과의 출퇴근 교통망은 언제 어떻게 만들려는지, 수도권 인구분산시책과는 어떻게 조화되는 건지, 현지주민들에 대한 보상·이주·생활대책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무런 프로그램이 제시되지 않았다.
분당과 일산지역에 18만가구분의 주택을 91년부터 공급토록 하겠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으로 내놓은 것이 없었다.
파생될 여러 문제점에 대한 고려는 고사하고 관계부처간에 꼭 필요한 협의조차 제대로 안돼 정부 내에서조차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다. 신도시계획이 발표된 이후 꼬리를 잇고 있는 숱한 잡음과 말썽은 즉흥적인 입안과정에서부터 숙명적으로 안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신도시 계획 발표 후 광란의 아파트값 폭등은 진정되고있다. 신도시계획을 발표하면서 기대했던 1차적인 효과는 거둔 셈이다.
이 투기진정효과 때문에 비록 문제점이 많더라도 신도시 계획을 없었던 것으로 하거나, 골격자체를 바꾸기는 어렵게 되어버렸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가까스로 얻은 진정효과가 정부시책에 대한 불신까지 겹쳐 또 어떻게 교란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때문에 국회의 재검토촉구결의는 신도시계획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보다 현실성 있는 사진을 만들라는 자극정도로 생각하는 게 합당하다. 계획자체를 백지화할 단계는 지난 것이다.
어차피 서울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물량공급이 불가피하고, 베드타운건설은 가장 효과적 방법의 하나다.
정부가 계획하고있는 분당과 일산을 놓고 볼 때 서울도심과의 교통은 일산이 더 편리해 보인다. 그러나 서울시민의 강남선호경향 때문인지, 일산이 휴전선과 가깝다는 안보상의 고려때문인지 일산보다는 분당의 인기가 훨씬 더 높다.
또 이미 외지인 소유의 땅이 많은 분당에 비해 누대의 토박이 농민이 많은 일산주민의 신도시건설에 대한 반발이 훨씬 뿌리깊다.
물론 댐·도로·도시건설 등 개발계획을 추진하자면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써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왕이면 반발을 가급적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역시 신도시계획은 일산보다 분당쪽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분당부근에는 부재대지주 토지가 많다고 하니 편입기준을 넓혀 분당의 도시입지를 확대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경우 편입대상의 우선 순위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사유지보다 국공유지, 사유지중에선 현지인 소유지보다 부재지주 소유지, 소지주땅보다는 대지주땅을 우선 편입시켜야 할 것이다.
일산은 안보상의 문제, 입주희망자들의 선호도, 현지 주민들에 대한 보상·대토확보의 경제성, 주민들의 반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계획 자체를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분당지역의 확대나 다른 대안이 마련될 수 있다면 일산신도시계획을 당초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고집할 필요가 없다.
서울시민의 아파트 물량공급을 위해선 베드타운건설 못지 않게 서울시내 빈땅에 아파트를 많이 짓게하는 게 중요하다. 대규모 건설회사들이 빈땅을 확보해 놓고도 아파트를 짓지 않는건 아파트분양가가 묶여있어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분양가와 시가의 엄청난 괴리는 건설업자들의 건축의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실수요자에게도 그림의 떡일 뿐 아무런 득이 안된다. 건축 부진으로 값이 올라 오히려 손해만 보게된다.
그렇다고 분양가를 올린다고 하면 모처럼 진정된 아파트가격에 불을 붙일 위험이 있다.
때문에 분양가를 당장 올리지 않으면서도 업자들에게 적정이윤을 보장해주는 묘안을 생각해내야한다. 채권입찰액의 일정비율을 건설업자에게 주택채권과 똑같은 장기저리조건으로 융자해 주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수요자에게는 추가부담이 없고 업자에게는 이윤이 보장된다. 정부에도 돌아오는 단위채권액은 줄지만 건축물량증가에 따라 총체적인 채권액이 늘어나 별로 손해 될 것이 없다. 또 아파트의 위치와 건축수준에 따라 채권입찰액도 차등이 생기고 업자에게 돌아갈 몫도 달라지므로 제한적이나마 시장경제원리가 되살아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신도시계획의 허점은 실천 가능하게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완방향을 미리 한정하거나, 계획추진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켜 투기를 재연시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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