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탈바꿈 준비하는 작가의 몸부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소설가 김종광. 1971년 충남 보령생(소주 들어가면, 용케 은폐했던 충청도 사투리가 발동함). 90학번, 98년 등단. 최근 2년간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본인은 "말이 국장이지 머슴이여"라고 토로함). 대표작 '경찰서여, 안녕' '71년생 다인이' '모내기 블루스' 등. 등단 직후 '90년대식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주목받음.

세 번째 단편집 '낙서문학사'(문학과지성사)를 발표한 김종광의 이력이다. 여태의 김종광은 몇몇 선배 작가들의 후광에 얹혀 설명되곤 했다. 이를 테면 성석제의 수다, 김소진의 민중성, 고향 선배 이문구 풍의 능청을 두루 장착한 'X세대 작가'란 식으로 불린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변했다. 변한 게 틀림없다. '머슴' 그만두고 두문불출하는 전업작가 김종광에게서 변화의 태동을 감지한다. 본인이 좀체 입을 열지 않기에(가끔 연락되면 "대작 구상 중이니 방해 말라"고만 해대니) 명쾌히 논증할 순 없지만, 증거가 있다. 단편집에 실린 연작 '낙서문학사 창시자편'과 '낙서문학사 발흥자편'이다.

소설은 거창한 포부 아래 기획된 게 분명하다. 요절한 무명시인 유사풀이 훗날 낙서문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다는 게 '창시자편'의 줄거리고, 낙서문학이 주류문학이 된 건 성철호의 돈 때문이었다는 게 '발흥자편'의 개요다. 줄거리만 봐도 감이 온다. 작정하고 문학을, 문학을 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은 것이다. 여기엔 물론 요즘 문학에 대한 언짢은 심기가 깔려있다. 몇 구절은 아예 노골적이다. '내가 있던 문학판은 진창이었고 나는 한 마리 개였죠''개나 소나 다 돈 보고 문학하던데''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애인이 되었습니다.'

독특한 형식에서도 모종의 전략이 감지된다. 유사풀과 성철호의 일생은 주변 인물의 증언으로 재구성된다. 이럴 경우, 모든 증언을 종합하면 한 인간의 생애가 총체적으로 복원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설에선 아니다. 외려 헷갈릴 뿐이다. 이런 걸, 전형성의 해체라고, 고상하게 표현한단다.

두어 달쯤 전. 작가가 소설집 제목을 추천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권했던 게 단편 '낭만 삼겹살'이다. 고향 냄새 폴폴 풍기는, 예의 김종광의 작품이라고 여겨서였다. 작가도 맞장구쳤지만, 출간된 제목은 달랐다. 그러고 보니 '낙서문학사'연작 말고도 세태소설 풍의 단편 몇 편이 더 들어있다. '71년생 종광이'의 변신을 주목한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