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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우방국 도발” 정경두 강경…군 안팎 “일본 의도에 말리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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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정경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26일 해군작전사령부을 찾아 일본 초계기의 저고도 근접위협비행에 대해 “우방국에 대한 심대한 도발행위”라며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군 안팎에선 ‘도발’이라는 단어를 놓고 전략적이지 못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정책실장을 지낸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발 단어는 군이 지금까지 주로 북한에 대해서만 썼던 용어”라며 “마치 정 장관이 일본을 군사작전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발은 주로 북한에 썼던 용어” #초계기 대응 전략적 미숙 지적 #전문가 “관건은 전쟁 아닌 여론전 #경고사격 같은 무력 대응 삼가야”

국방부는 『국방백서 2018』에서 ‘북한=주적’ 조항을 삭제한 뒤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써놨다. 정 장관 발언대로라면 일본을 한국의 적으로 삼는 게 논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느닷없이 레이더 조준 주장으로 싸움을 걸어 왔고, 이후 저고도 근접위협비행으로 자극하고 있지만 도발을 자행하는 군사적 ‘주적’에 오를 단계는 아직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한·일이 초계기 때문에 전쟁을 벌일 게 아니라면 결국 관건은 국제 여론전”이라며 “‘도발’보다는 ‘항행의 자유에 대한 위험’이라는 표현이 국제 여론에서 더 공감을 샀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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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부에서도 걱정이 있다. 이러다 일본의 의도에 말릴 수 있어서다. 군 당국자는 “도발로 규정했으니 도발에 대해선 경고사격과 같은 무력 대응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며 “만일 경고사격을 한다면 국제 여론은 ‘한국이 레이더로 조준한 데 이에 경고사격까지 했다’는 일본 주장에 손을 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한 뒤 향후 일본 자위대의 군사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부감을 없애는 게 일본의 노림수라는 얘기다. 일각에선 대화를 주도하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초계기 논란은 대화를 거절하는 쪽이 지는데 일본이 먼저 실무협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으니 지금은 일본이 불리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런 가운데 물밑에서 미국에 협조를 구했다. 정 장관은 29일 국방부를 찾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 비공개 면담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해리스 대사가 새해 인사를 한다는 뜻을 먼저 전했다”며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비공개”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해 초계기 논란 등 국방과 관련한 다양한 한·미 현안을 놓고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해리스 대사는 대사직을 맡기 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책임졌던 태평양사령관이었던 만큼 군사적 사안에 정통하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가 초계기 문제를 놓고 한국 입장을 편들며 중재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해리스 대사는 정 장관에게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는 게 백악관의 뜻”이라고 던져놓고 떠났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 소식통은 “해리스 대사 머릿속엔 방위비 분담금만 들어 있더라”고 귀띔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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