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서정시, 양분된 시단 "연결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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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문학이 사회 현실의 반영이고, 그 사회를 움직이는 바탕중의 하나가 경제라고 한다면 문학 역시 한 시대의 경제구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령 경제적 계층이라는 점에서 볼 때, 보편적으로 우리는 빈곤층·부유층·중산층으로 나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데올로기의 입장에서는 앞의 두 부류를 이념화하여 프롤레타리아·브르좌에 대응시키고 있다는 것도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같은 조응관계가 문학에서도 성립될 수 있다. 꼭 경제적 계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견제할 때, 가령 시에서도 노동시 및 운동시가 전자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소위 해체시는 후자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을듯하다. 그 이념지향에 있어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상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최근 시단이 노동 및 운동시와 해체시에 의해 거의 양분되다시피 하여 그 중간계층의 목소리가 죽어 있다는 사실이다. 건전한 사회가 중산층에 의해 지탱되어야 하듯 한시대의 문학 역시 다양성에 의해 꽃피워야 한다면 그 중간계층의 문학 또한 건강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의 우리시단에 요구되는 것은 건강한 서정시들이라 할 수 있다.
전통 서정시들이야말로 노동 및 운동시와 해체시 사이에서 안정의 지렛대 역할을 담당하는 중간층의 시들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달의 발표시들 가운데 임영조의 『나무의 사계』(현대문학 5월호), 송재학의『영산홍 그늘』(현대문학 5월호), 안도현의 『검은 어머니』(문학사상 5월호)등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무의 사계』는 전통 서정시가 갖추어야 될 본질적인 조건들을 잘 건사하면서도 고루하지 않고 오히려 참신한 감수성을 살려낸 수작이다. 그것은 시인이 유기적인 은유구조의 치밀한 틀속에 자신의 서정을 객관화시킬 수 있었던 데서 가능하다. 독자들은 이 시에서 시인의 메시지가 하나의 감동으로 와 닿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시의 이념과 미학이 서정성이라는 저울대에 의해 평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념이란 인간 삶의 본질이 기본적으로 자연이 갖고 있는 생명 의지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그 미학이란 나무와 인간을 대비시킨 병치법을, 그 서정성이란 보편적 정감에서 우러나오는 건강한 정서를 가리키는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영산홍 그늘』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그린 작품이다. 5월 어느 날 영산홍의 아름다움에 끌려 그 꽃 그늘 속에 들어간 시인은 자신이 한 그루의 꽃나무로 변신하는 신비한 체험을 맛본다.
그리하여 그는 「영산홍물소리 서늘한 체관을 따라 내려가 가장 낮은 당에 검은 뿌리가 꿈틀이고…진흙과 욕망과 차디찬 지하수가 묽은 해와 만나고 있는」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영산홍 그늘』역시 전통적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서정시가 지녀야 할 여러 규범들, 예컨대 이미지에 의한 형상화, 서정성의 환기, 언어의 심미화를 잘 실현시키고 있다.
『검은 어머니』는 밭에 일하러 가는 「한 떼의 여인들····호미 들고 일당 오천원 들판으로 가는 까무잡잡하니 삶이 눈부신 조선의 아주머니들」에게서 모성을 느끼는 시인의 공동체적 사랑이 형상화 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 형상화의 기법이나 환기하는 정서에 있어 이 시 역시 진솔하게 서정시의 규범을 지키고 있다. 여러 형태의 반복어법, 도입부와 결말부의 일치, 서정적 묘사 등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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