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In&out맛] "밥맛은 과학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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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왼쪽부터 CJ주식회사 식품연구소 쌀가공센터의 정헌웅, 동원F&B 동원식품과학연구소 임용훈, 부방테크론 출하검사팀 김종원씨.

◆ '햇반'의 신화 CJ식품연구소 정헌웅씨

1962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넷이다. 신혼 초 새색시를 위한다고 주방에 들락거렸어도 두 사내아이(초등 6.3)의 아빠인 이제는 졸업하고 남았을 때다. 그런데 아직도 밥을 짓는다. 아내를 위한 밥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는 대한민국 남녀 모두를 위해 밥을 짓는다.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찡"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어내는 밥이다. 그중엔 흰쌀밥.보리밥.오곡밥.발아현미밥 등 제품화된 밥도 있지만 시중에 소개되지 않은 정씨만의 독특한 밥도 꽤 많다.

밥 짓는 일은 모든 공정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포장까지 자동으로 이뤄져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시사철 똑같은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맛을 보는 일이 가장 괴롭다. 물론 첨단 장비나 기계로 분석하는 시스템도 있지만 직접 입으로 맛보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정씨가 하루에 먹는 밥의 양은 다섯 끼에 해당한다. 이렇게 먹은 지 벌써 10년이나 됐다. 다행히 남들이 걱정하는 산업재해(=비만)는 피했다. 가마솥 밥을 짓는 조건으로 꾸며진 연구실 덕분이다. 매일 땀을 비 오듯이 흘리다 보니 먹은 것이 땀으로 흘러나갔다는 얘기다. 집에서는 쌀을 씻어 밥을 한 적도 없는데 두 아이들이 "아빠 밥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어 항상 미안한 마음이란다.

◆ 밥주걱 쥔 엔지니어 부방테크론 김종원씨

입사할 때만 해도 대학 전공(전기과)에 맞게 양손에 펜치나 드라이버를 쥘 것이라고 상상했단다. 그러나 벌써 3년째 왼손에 밥통, 오른손엔 밥주걱을 쥐고 산다. 전기밥솥 생산 업무가 아니라 최고의 밥맛을 내는 전기밥솥을 위한 검사업무가 떨어진 것. 처음엔 생소한 밥 짓기에 다소 서운한 적도 있었으나 요즘은 입을 귀에 걸고 산다. 열심히 밥을 짓다가 사랑하는 색시를 퍼냈기 때문이다. 밥을 지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고객상담팀 여직원에게 "밥맛 좀 봐 달라"며 자연스럽게 접근한 것. 리홈 밥솥에선 가능한 소갈비찜 등 다른 메뉴도 만들어 자주 불러들였단다. 1년여 만에 "이제는 회사 밖에서 제대로 된 음식 좀 사 달라"는 당돌한 그녀의 유혹(?)에 못 이기는 척 응해주다 보니 지난해 10월부턴 한 이불을 쓰는 사이로 발전했단다.

얼마 전엔 밥을 짓다가 결혼 예물반지가 사라져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도 있었다. 신제품 취반 성능을 시험하던 중 묵직해야 할 손가락이 허전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뒤 다 된 밥을 뒤적이다하얀 쌀밥 속에서 반지를 찾았다고 한다. 색시에게 받은 반지로 밥솥에 프러포즈를 한 꼴이었다. 그 후로 김씨의 반지는 손가락 대신 색시의 보석함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 매일 죽 쑤는 남자 동원식품과학연구소 임용훈씨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남들에겐 평범한 인사말이 임씨에게는 참 난처한 질문이 된다. "네, 그냥 죽 쑤고 지내지요." 듣는 사람에 따라선 주먹다짐이 오갈 정도로 큰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답이다. 그런데 죽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임씨 입장에선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는 긍정적 의미의 답이다.

출근하면 바로 몇 가마나 되는 찹쌀을 불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제품 개발은 물론 기존 제품 개선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끓이는 죽의 양도, 시식해야 하는 양도 상당하다. 덕분에 따로 식사를 챙겨 먹을 필요가 없는 날도 많다. 맛있는 죽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짬나는 대로 소문난 죽집 방문도 빠뜨릴 수 없는 업무다. 이것도 쉽지만은 않다. 적어도 서너 가지를 한 번에 먹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매상을 왕창 올려주니 죽집 주인은 "맛있게 잘 먹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임씨는 그저 배부른 미소만 띨 뿐이란다. 그러다 보니 죽 쑤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몸무게가 10%나 불어 아내에게 '직업병 환자'란 놀림감이 됐다. 그래도 죽이길 망정이지 안도하며 내일도 멋지게 죽 쑬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 남자들의 밥맛 노하우

(1) 햅쌀은 평소보다 물의 양을 조금 줄이고, 묵은 쌀은 물의 양을 약간 늘려야 한다. 수분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2) 밥솥의 적정량으로 밥을 지어야 한다. 표시용량의 3분의 1, 3분의 2가 적당하다. 10인분 밥솥엔 4~7인분을, 6인분 밥솥엔 3~4인분만 짓도록 한다.

(3) 쌀은 물에 30분간 불렸다가 짓는 밥이 맛있다. 단 쌀을 불리는 프로그램이 내장된 전기밥솥은 오히려 바로 지어야 밥이 맛나다.

(4) 밥물을 맞출 때는 손을 넣어 경험에 의존하기보다 계량컵이나 밥솥에 그려진 용량으로 맞추는 것이 정확하다. 쌀의 양에 맞춰 과학적으로 물의 양을 조절한 것이다.

(5) 전기밥솥에 남은 밥은 가운데에 산처럼 쌓아둔다. 바깥부분에 숨겨진 열선으로 인해 밥이 쉽게 변색하거나 냄새가 날 수 있다.

(6) 전기밥솥에 보온하는 시간은 12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12시간이 넘으면 아무리 보온 기능이 좋아도 밥의 품질 변화가 생긴다.

(7) 최신형 모델일 경우엔 재보온 기능을 활용하자. 찬밥을 그대로 넣어도 짧은 시간에 갓 지어낸 것 같은 더운밥으로 변신한다.

(8) 무균포장밥(일명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웠을 땐 일반 밥처럼 빨리 헤쳐주어야 밥맛이 좋아진다. 설거지까지 감수한다면 밥그릇으로 옮겨 담는 게 최고다.

*** 바로잡습니다

6월 23일자 W3면 '밥맛은 과학입니다' 기사에서 전기압력밥솥 '리홈'의 제조회사명은 부광테크론이 아니라 부방테크론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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