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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가 낮?…백두대간 터널 발파작업 둘러싸고 논란

중앙일보

입력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신풍터널 공사 현장. 사진에서 보이는 터널 입구는 본 터널로 진입하기 위한 경사터널이다. 문경=강찬수 기자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신풍터널 공사 현장. 사진에서 보이는 터널 입구는 본 터널로 진입하기 위한 경사터널이다. 문경=강찬수 기자

오후 10시가 낮일까, 밤일까.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 발파 작업 시간을 둘러싸고 엉뚱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이 벌어진 것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하고 SK건설이 시공 중인 경기 이천~경북 문경 철도건설사업의 제8공구 공사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시작한 8공구 공사는 2022년까지 2281억 원을 들여 충북 충주 수안보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 사이 백두대간을 지나는 터널(신풍 터널)과 교량 등 11.6㎞를 건설하는 공사다.

백두대간 뚫는 터널 공사 

이천~문경 철도공사 제8공구 공사 개요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문경시 문경읍 사이 11.6km구간이다. [자료 SK건설]

이천~문경 철도공사 제8공구 공사 개요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문경시 문경읍 사이 11.6km구간이다. [자료 SK건설]

지난 17일 오전 취재팀이 문경읍 각서리 공사 현장을 찾았을 때 본 터널 양쪽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작업 속도를 빨리하기 위해 옆에서 경사 터널을 2개를 뚫고 들어가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모 SK건설 현장사무소장은 "오후 10시까지 발파하고 있다"면서도 "현행 소음·진동관리법에서는 오후 10시까지를 '주간'으로 정해놓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문경 신풍터널 공사현장. 앞에 보이는 터널은 본 터널로 진입하기 위한 경사터널 입구다. 문경=강찬수 기자

문경 신풍터널 공사현장. 앞에 보이는 터널은 본 터널로 진입하기 위한 경사터널 입구다. 문경=강찬수 기자

하지만 당초 철도시설공단 등은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의 '소음·진동 저감 대책'에서 "발파 시간은 주민과 협의해서 사전에 예고한 뒤 발파하고, 특히 백두대간 통과 지역과 인근 반경 500m 이내 지역은 주간 발파(하루 2회)를 하겠다"고 명시했다.

시공사 측도 "터널 굴착 시 발파 시간은 제1발파 오전 6~7시, 제2발파 오후 1~6시로 주간 시간대에 발파 계획을 수립했다"는 내용의 '환경영향평가 심의 의견 조치 계획'을 제출했다.

그런데도 시공사 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공사 현장을 모니터링한 한국터널환경학회 이찬우 부회장은 "지난해 8월 7일의 경우 오후 10시 48분에 발파하는 등 지난해 가을까지 하루 3차례 밤 10시 이후까지 발파 공사가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엔 밤 10시 이후에도 발파"

문경 신풍터널 공사에서 나오는 지하수와 오폐수는 정화작업을 거쳐 방류된다. 문경=강찬수 기자

문경 신풍터널 공사에서 나오는 지하수와 오폐수는 정화작업을 거쳐 방류된다. 문경=강찬수 기자

경북 문경읍 신풍터널 공사 현장. 터널 작업에서 나오는 지하수나 오폐수는 침사지에서 처리 과정을 거쳐 바로 옆 각서천으로 방류된다. 시공사 측은 오폐수는 적정하게 처리해서 내보고 있고, 실시간으로 수질을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경=강찬수 기자

경북 문경읍 신풍터널 공사 현장. 터널 작업에서 나오는 지하수나 오폐수는 침사지에서 처리 과정을 거쳐 바로 옆 각서천으로 방류된다. 시공사 측은 오폐수는 적정하게 처리해서 내보고 있고, 실시간으로 수질을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경=강찬수 기자

이에 대구지방환경청에서는 지난해 10월 두 차례 현장 조사 후 철도시설공단 등에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철도시설공단과 국토교통부는 오히려 시공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업 계획을 "오후 10시까지 하루 두 차례 발파한다"는 내용으로 변경해 환경부에 통보했다.

현행 소음·진동관리법에서 오후 10시까지를 주간으로 정했다는 게 이유였다.
해당 법에서 소음 규제는 주간(오전 7시~오후 6시), 저녁(오후 6~10시), 야간(오후 10시~다음날 오전 6시), 아침(오전 6~7시) 등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같은 법의 진동 규제 조항에서는 주간(오전 6시~오후 10시), 심야(오후 10시~다음날 오전 6시)로만 구분하고 있는 만큼 진동 규제 조항을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김동문 철도시설공단 충청권사업단 중부내륙사업소장은 "환경영향평가 협의 때 '주간'의 개념을 세밀하게 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번에 주간을 오후 10시까지로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업소장은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발파 횟수를 늘리려는 것은 아니다"며 "턴키 공사이기 때문에 다른 공정에서 앞당기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환경부 환경영향평가과 관계자와 대구지방환경청 환경평가과 관계자는 "경미한 사업계획 변경은 사업 승인기관의 자체 승인 사항이기 때문에 환경부가 간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환경부 환경영향평가과 관계자는 "소음·진동관리법에서 그렇게 정해놓았고, 공무원은 법에서 정한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경평가 제도 근본 뒤흔들어"

문경 신풍터널 공사현장. 덤프 트럭이 발파 작업에서 나온 암석을 운반하고, 레미콘 차량이 터널로 들어가 작업하기도 한다. 문경=강찬수 기자

문경 신풍터널 공사현장. 덤프 트럭이 발파 작업에서 나온 암석을 운반하고, 레미콘 차량이 터널로 들어가 작업하기도 한다. 문경=강찬수 기자

이에 대해 터널환경학회 이 부회장은 "한반도 생태 축인 백두대간의 야생 동물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야간 발파를 하지 않도록 환경영향평가에서 협의한 것인데, 밤 10시를 주간이라 우기고 발파작업 한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고,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본질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은 "소음·진동 규제 자체는 도시 지역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백두대간처럼 자연 생태계를 보호해야 할 곳에서는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터널환경학회 측은 야간 발파 등과 관련해 SK건설과 철도시설공단을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학회 측은 고발장에서 "2016년 환경단체들과 오후 6시 이후 야간 발파를 하지 않기로 하고 이를 문서로 명기하기로 합의했으나, 철도시설공단 등이 정작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이를 담지 않아 직무를 유기하고, 백두대간 보호구역 내에서 야간 발파를 진행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문경=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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