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선 『예술의 전당』|국립화 방안 조심스럽게 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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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재단법인체인 예술의 전당(이사장 윤량중)이 국립화 할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문공부는 최근 예술의 전당을 국립기관으로 전환할 방안을 검토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기획원에 내년도 건설·운영비로 2백억 원의 국고예산을 요청했다.
문공부의 이 같은 검토는 지금까지 예술의 전당의 건설·운영비를 충당해 온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공익자금지원이 내년부터 끊기게 됐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다.
공익자금의 운용을 결정하는 방송위원회는 지난 1월 예술의 전당 건설 지원금으로 공익자금 1백62억 원을 배정하면서 내년부터는 이를 국고로 충당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국내 최대의 종합문화공간이 될 예술의 전당은 지난84년 당시예상건설비 9백54억 원을 공익자금으로 지원하는 것을 근거로 착공됐다.
지난해 2월 1단계로 음악당과 서예관을 완공·개관한데 이어 2단계로 금년말까지 미술관과 예술 자료관을, 3단계로 92년 말까지 축제극장·야외극장 등 나머지 시설을 완공, 93년 초 전면 개관할 계획으로 공사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건설계획은 올해부터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문공부는 올해 말까지 2단계공사를 끝내기 위해 올해 2백50억 원의 공익자금지원을 요청했으나 1백62억 원으로 삭감되는 바람에 당초 계획대로 완공이 어렵게 된 것이다.
문공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 92년 말까지 3년 동안 투입되어야 할 건설비만 해도 4백50억 원에 이른다』고 밝히고 『공익자금지원이 끊기면 결국 이를 국고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예술의 전당은 비단 건설문제뿐만 아니라 운영 면에서도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있다.
예술의 전당은 일부를 개관한 지난해만해도 운영비로 40억 원이 소요됐으나 공연수익은 8억 원에 그쳐 무려 32억 원의 적자를 냈고 결국 공익자금으로 적자를 충당했다.
이 같은 운영적자폭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며 전면개관이후에는 연간 2백억 원정도의 운영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있다.
결국 건설은 어떻게든 당초 계획대로 이뤄진다 해도 앞으로 계속 누적되는 운영적자는 누가 어떻게 감당해나갈 것인가가 난제로 남게된다.
이 같은 실정에서 예술의 전당은 지난 3월부터 운영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위원장 이철정) 의 실력행사에 부닥쳐 몸살을 앓고있다.
문화예술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지난1월 결성된 예술의 전당 노조는 예술의 전당이 법적으로는 엄연히 민간단체인데도 불구하고 문공부장관이 이사장을 직접 임명하는 등 실질적으로 문공부의 산하기관처럼 운영되어 왔다고 지척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윤이사장의 퇴진 ▲운영의 자율성 보장 ▲관선 이사제 폐지 등을 내걸고 철야농성을 벌였으며 급기야는 서로 맞고소하는 등 법정투쟁으로까지 비화됐다.
이에 대해 문공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1천2백억 원을 넘게 들여 건설하는 예술의 전당을 그대로 노조에 넘겨달라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요구』라고 못박았다.
예술의 전당이 안고있는 이 같은 많은 문제점들이 표면화되자 문공부와 노조 측은 제각기 예술의 전당의 새로운 위상정립을 위한 공청회를 마련해 돌파구를 모색할 계획이다.
그러나 공청회는 서로의 입장을 뒷받침할 근거와 여론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유도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90년대 이후 한국문화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될 예술의 전당은 서울서초동 우면산 기슭 7만평의 대지 위에 연건평 3만평의 각종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서 미국의 링컨센터나 영국의 바비칸센터 등 세계의 유수한 문화센터를 능가하는 위용을 갖추게된다.
그러나 아무리 겉모양이 훌륭하다해도 여기에 걸 맞는 내실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전시효과만을 위한 거대한 회색빛 공룡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링컨센터나 바비칸센터 등 외국의 유명한 문화센터들이 정부의 보조와 사회각계의 기부금으로 훌륭히 운영되고있다는 점은 예술의 전당의 앞날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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