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는건 금방이니까요”…CCTV, 무인 경비도 아랑곳 안 한 절도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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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경비시스템 있는지 몰랐습니까?”

“알고 있었는데, 도망가는 건 금방이지 않습니까.”

자신의 범행을 진술하는 양 모(35)씨를 조사하는 경찰도 그의 ‘대책 없음’에 혀를 내둘렀다. 양씨는 지난 1월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서초구·중구 등지에서 빈 상점에 침입해 5차례에 걸쳐 100여만원의 현금을 훔친 혐의로 지난 17일 붙잡힌 참이었다.

양씨의 범행모습이 담긴 CCTV 화면. [서울 서초경찰서 제공]

양씨의 범행모습이 담긴 CCTV 화면. [서울 서초경찰서 제공]

교도소 나와 하루도 안 돼 다시 범행

양씨는 지난 1월 10일 경기도의 한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상습특수절도죄 및 유사 범죄로 이미 여러 차례 형을 살았다. 교도소에서 보낸 기간을 합하면 35년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10여년 세월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 서초구에 내린 양씨는 그날 밤 서초동의 한 중식집 출입구를 손으로 뜯는 것으로 다시 범행을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서초동에서 범행하기로 작정을 한 참이었다. 양씨가 서초구를 첫 범행지로 택한 이유를 정확하게 진술하지는 않았지만, 경찰은 “서초 일대가 상가가 많고 부촌이고, 고속버스터미널 등 이동이 쉬웠던 점이 작용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CCTV도 무인경비시스템도 아랑곳하지 않아  

범행을 준비하며 그가 산 것은 장갑과 마스크뿐이었다. 양씨는 상가를 돌며 맨손으로 뜯을 수 있는 유리문이 달린 상점을 노렸다. 상가 내부 CCTV나 무인경비시스템 표지도 범행을 막지는 못했다. 경찰은 양씨에게 ”무인경비시스템이 있는지 몰랐냐“고 물었는데 양씨는 ”알고 있었다. 훔치고 도망가는 건 금방이지 않으냐”고 대답했다. 실제 범행에는 1~2분 내외 시간이 걸렸다. 양씨 말대로 경보음이 울리고 경비가 출동하더라도 도주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양씨는 CCTV 범행 장면을 추적하고, 교통카드 사용 내용 등을 분석한 경찰에게 지난 17일 아침 모란역에서 검거됐다.

경찰, ”양씨, 다시 교도소 가야 해 괴로워해“

양씨는 범행을 저지른 뒤 별다른 거처 없이 모텔을 전전하다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양 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범행했다“고 범행 이유를 말했다. 경찰은 일정한 직업도 없었고, 출소 후 연락할 수 있는 가족도 마땅치 않았던 양씨가 막막한 마음에 대책 없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 양씨에게는 가족이라고는 형 한명뿐인데 그마저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차라리 다시 교도소라도 가고 싶었던 건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출소 일주일 만에 붙잡힌 양씨가 막상 다시 교도소에서 몇 년을 보낼 생각을 하니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양씨를 상습특수절도 혐의로 양씨를 23일 검찰에 넘겼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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