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섬'이 꽃피는 시기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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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음을 알리는 진달래가 서울 남산에서 먼저 필까, 아니면 훨씬 남쪽인 충북 제천의 월악산에서 먼저 꽃망울을 터뜨릴까.

북위 36도50분에 위치한 충북 제천의 월악산이 북위 37도30분의 서울 남산보다 이를 것 같지만 실제는 반대다. 올해 남산에는 4월 7일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월악산에서는 보름쯤 뒤인 4월 20일에야 꽃이 피었다.

일반적으로 북반구에서 위도 1도만큼 북으로 이동하면 개화 등 생물 활동이 나흘 정도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남산에 꽃이 먼저 피는 걸까.

환경부는 도시의 열섬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난방과 자동차 운행, 공장 가동 등으로 도심의 온도가 외곽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이 북쪽에 위치했지만 기온이 더 빨리 상승, 봄이 일찍 된다는 얘기다. 열섬현상과 무관한 강원도 인제 점봉산(북위 38도 부근)에서는 월악산보다 보름 정도 늦은 5월 5일에 진달래가 피었다.

환경부는 이런 내용의 국가 장기생태연구사업의 중간보고서를 21일 공개했다. 장기생태연구사업은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 등이 생태계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사업으로 2004년 말 시작돼 10년간 진행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서울여대 이창석(환경생물학)교수는 "진달래 개화시기 비교는 지역별로 고도의 영향까지 감안한 것"이라며 "열섬효과를 제거한다면 남산의 진달래 개화시기는 4월 22일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진달래가 개화 직전 시기의 온도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해 개화시기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서울 남산의 소나무 숲 토양이 갈수록 산성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산성도를 나타내는 pH값(낮을수록 산성도가 강함)이 1996년에는 4.4로 측정.보고됐으나 지난해에는 4.2로 측정됐다. 남산은 이미 산성화의 위험 수준(pH 4.5 이하)에 도달해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서울 남산에서는 오염이 심한 공단지역에 많은 때죽나무가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리산 고산 지역에서는 한반도 북쪽 끝인 삼지연에서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솔밭물결자나방이, 월악산에서는 최근 신종으로 등재된 이끼도롱뇽이 관찰됐다. 솔밭물결자나방의 경우 빙하기 때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남한에서는 지리산과 같은 고산 지대로 쫓겨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하고 있다.

한편 장기생태연구사업에는 전국에서 50여 명의 교수급 연구진과 120여 명의 연구조원이 참여하고 있다. ▶육상 분야는 지리산과 동해안 산불 피해지역 등 다섯 곳 ▶담수 분야는 낙동강 등 세 곳 ▶연안 분야는 전남 함평만 한 곳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강찬수 기자

◆ 열섬(heat island)현상=대도시에서는 아스팔트.콘크리트가 태양 빛을 반사하고, 공장.자동차.주택에서 열이 배출되면서 주변 지역보다 훨씬 높은 기온 분포를 보인다. 온도분포 곡선을 그리면 고온 지역이 고립된 섬 모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열섬현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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