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독 화해 56주년…獨 대사 “한일 관계, 청년 세대 교류에 달려”

중앙일보

입력

“청년 세대가 양국 간 인식 차이를 직시하고 풀어가야 합니다. 이들이 국경을 넘어 직장을 잡고, 학교에 진학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슈테판 아우어 주한독일대사)

"청년 교류 통해 佛-獨 악감정 풀어나갔다" #"韓-日 청년 서로의 문화에 깊은 호감 있어" #"인턴십·교환학생 등 제도적 노력 필요"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오른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가 22일 오전 서울독일학교에서 진행된 중앙일보 인터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장진영 기자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오른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가 22일 오전 서울독일학교에서 진행된 중앙일보 인터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장진영 기자

주한독일대사와 주한프랑스대사가 22일 오전 9시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서울독일학교에서 만났다.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였던 양국이 1963년 1월 22일 체결한 화해 협정인 ‘엘리제조약(엘리제협정)’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양국은 이 조약을 계기로, 네 차례의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사회 전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엘리제조약을 기념하기 위한 양국 대사의 만남은 1월 22일을 전후로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양국 대사가 번갈아가며 서로의 관저에서 오찬을 갖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

올해 기념행사는 한층 특별하게 치러졌다. 2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엘리제조약을 계승·발전한 '아헨조약'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아헨은 18세기 합스부르크가의 계승을 둘러싸고 7년간 이어진 유럽 전쟁의 종식을 선언한 곳으로 유럽 평화의 상징이다. 아헨 조약을 통해 양국은 독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삼는 등 더욱 강력해진 우정을 과시했다.

이들에게 한일 관계에 대해 묻자 “낙관적으로 전망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우어 독일 대사는 “지난해에만 843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했다”며 “한국인의 일식 사랑, 일본인의 K-POP 사랑 등 양국의 젊은이들이 서로의 문화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한, 한일 관계를 비관적으로 전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우어 대사는 프랑스와 독일이 우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로 ‘청년 교류’를 꼽았다. 외교 원칙이 국내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56년간 이어져 온 프랑스-독일 청년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800만 명의 청년이 문화 교류 기회를 얻었다” 며 “반세기 동안 양국 청년들이 국경을 오가며 이어온 인턴십·교환 학생·언어 교류 프로그램 등이 탄탄한 외교 정책의 기반이 됐다”고 강조했다.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왼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가 22일 오전 서울독일학교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왼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가 22일 오전 서울독일학교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파비엥 페논 주한프랑스대사 역시 미래 세대에게 충분한 교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논 대사는 또 양국의 역사 교육에 대해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편찬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하지만 청년 세대가 양국의 역사 인식 차이를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프랑스-독일 공동 역사교과서는 2006년 양국에서 동시에 출간돼 역사 갈등 해결의 모범 사례가 됐다. 교과서는 고교 1학년용(그리스 민주주의에서 프랑스 혁명까지), 2학년용(19세기에서 2차 세계대전까지), 3학년용(1945년 이후 현대사)의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럽사 뿐 아닌 세계사 전체를 다룬다. 경쟁 입찰을 통해 선정된 양국의 민간 출판사가 발간을 담당했으며 양국 국립대 교수진 등이 편찬 위원으로 참여했다.

페논 대사는 “양국 간 협력은 단지 두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며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등 공동의 가치관(joint value)을 지키는 것은 이웃국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엘리제조약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과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1963년 1월 22일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맺은 화해협력조약.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맺었기 때문에 엘리제조약이라고 불린다. 이 조약에는 보불전쟁, 1·2차 세계대전 등으로 말미암은 양국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외교·국방·교육 등 전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며 국가 원수의 정기적 만남을 다짐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2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엘리제조약 56주년을 맞아 이를 계승하고 강화하는 내용의 '아헨조약'을 체결했다. 아헨조약에는 양국 협력 강화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나 테러와의 전쟁 등 국제 문제 해결에 대한 협력 방안이 담겼다. 또 양국은 새 우호조약을 기점으로 독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삼기로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