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수도론은 순리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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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땅에도 이치가 있다. 그것을 지리(地理)라고 한다. 지역정책은 모름지기 지리를 따라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지역이 발전하고 주민이 편안해진다.

서울과 인천.경기도의 시장.지사들이 합의해 제안한 이른바 대수도론을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수도권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함께 광역행정을 펴 나가겠다는 구상에 대해 나머지 지방자치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반발하고 있다. 대수도론의 핵심 내용이 수도권에 대한 규제 완화에 있고, 그것은 결국 '지방 죽이기'로 연결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정책 논쟁이 초입부터 이치를 따지기보다는 이해 다툼으로 번지고 있는 것 같아 유감이다.

이 논쟁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구조적 접근이 긴요하다는 것으로 여기에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수도권과 지방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누르고 뺏어 나눠주기'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냐 하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경제가 선진화의 고비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도 냉엄한 현실이다. 그리고 대도시가 국가 경쟁력을 대표하고 이끈다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정론이다. 그에 따라 대도시 중심의 광역행정협의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또한 세계적인 추세다. 주거.산업.환경.교통.복지 등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광역행정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굳이 도시 계층 체계에 관한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서울.수도권이 서울과 수도권 주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자명한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수도권 구상은 순리의 정책 대안으로 반길 만한 것이다. 개방화 시대다. 파리.런던.뉴욕 같은 거대도시들의 광역행정은 이미 알려진 바대로고, 이제는 국경을 넘어서까지 도시 간 연대가 추구되고 있다. 언제까지 폐쇄공간을 전제로 하는 낡은 이론에 매달려 제로섬 게임에 빠져 있을 것인가? 대수도권은 이미 실체적 현상이고, 그것을 행정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순리다. 수도권 주민의 편익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기반을 확충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해체가 아닌 건설, 갈등이 아닌 상생의 틀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심장에 비해 다른 기관과 사지의 기능이 약하다고 해서 심장을 억눌러 약하게 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수도권이 도쿄권, 상하이권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한국 경제가 일본이나 중국 경제의 지배체제 아래로 편입되고 만다. 그것이 지리의 가르침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말이지만 하향 평준화야말로 역리의 하책이다.

지방의 생산요소들이 역류(backwash)할 우려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유효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또한 순리다. 필자는 수도권에 맞설 강력한 대응축(counter-pole)으로 '남해안 벨트'의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지방에서도 광역행정협의체를 만들고 미래여건과 지역성에 맞게 잠재력을 일궈낼 방안을 궁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중앙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수도권의 성장과실이 지방에까지 원활히 파급되게 하는 공간적.비공간적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잘하는 곳은 더 잘하게 부추기고, 뒤처진 곳에는 여건을 조성하고 기운을 주는 처방이라야 상책이다.

이미 하나의 기능지역으로 얽힌 수도권을 굳이 벽을 쌓아 나누자는 것은 경직된 관료적 발상이다. 억지 규제로 불편을 가중시켜 집중을 억제하겠다는 것 역시 순리는 아니다. 지나치면 사람이든 자본이든 아주 봇짐을 싼다. 역리(逆理)의 정치가 된서리를 맞았다. 민심을 외면하고 시장에 대들며 역사에 반하는 것은 이치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지리까지 거스르지 않기를 바란다.

유우익 서울대 교수 세계지리학연합회(IGU)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