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주인 후보 선정 미룬 속사정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20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15층 대회의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돌연 "이대로는 도저히 주인을 낙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으로 기록될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연기된 것이다. 공자위의 발표 시간은 당초 오후 3시30분이었다. 공자위는 이날 아침부터 매각심사 소위원회와 본회의를 잇따라 열고 한 차례 정회까지 했지만 결국 발표를 연기하고 만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재계 판도를 뒤바꿀 대우건설 매각은 이미 국민적 관심사였다. 그러나 공자위는 회의실 문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짤막한 언급을 하고선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공자위원 A씨는 "'보안 유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최대 주주로 매각을 주관하는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오전 9시30분쯤 매각 소위의 위원들에게 각 신청업체의 평가점수가 담긴 심사자료를 제출했다. 위원들은 오전 10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평가가 합당한지, 틀린 곳은 없는지 등을 검토했다.

그러나 2시간30분 만에 5개 후보의 서류를 꼼꼼히 따져보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한 소위 위원은 "일단 형식적으로 심의 내용을 본회의에 상정했다"며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 충분하게 검토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달았다"고 말했다.

통상 공적자금이 들어간 기업을 매각할 때 캠코 등은 매각심사위원들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미리 내용을 알려준다. 그러나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해 금호아시아나에 대한 밀어주기 의혹과 입찰가 유출 등으로 잡음이 많았던 때문인지, 캠코는 회의 직전에 평가점수를 포함한 자료를 보낸 것이다.

이날 소위에서 일부 위원은 캠코의 심사자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자위원은 "이번 매각은 입찰가뿐 아니라 경영전략.기업도덕성 등 비가격 요소도 들여다보는데 일부 항목에 대한 평가가 일반적인 통념과 달라 위원들이 직접 따져보려 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본회의에서도 "당장 인수 후보를 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공자위원 B씨는 "약속한 시간에 결과를 발표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적 납득'"이라며 "대충 심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영철 공자위원장은 "평가결과에 특별한 문제가 있다면 지적해야 한다"며 "그러나 우리도 금방 자료를 받았는데 무슨 문제를 지적하겠느냐. 안건을 의결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결국 심사자료를 다시 매각소위로 되돌려보냈다.

캠코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공자위원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며 "특혜 시비와 관련해 캠코의 대응에 대해서도 많은 질타가 있었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자위원과 매각심사 위원들이 절차상 잡음을 의식해 시간을 조금 더 벌려는 것 같다"며 "공자위가 단순히 시간만 끌게 아니라 매각 과정에서 나왔던 여러 의혹도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가 지연된 데 대해 인수 희망업체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기대해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놓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금호 관계자는 "신중하게 결과를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두산.프라임.유진 등은 각종 의혹에 대한 '면피용 시간 끌기'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일단 반기는 분위기였다.

김준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