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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바람, 자갈마당 ‘홍등’ 끄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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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구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에 주상복합개발 사업승인 신청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대구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에 주상복합개발 사업승인 신청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대구시 중구 도원동에는 ‘자갈마당’이라고 불리는 골목이 있다. 100년이 넘은 집창촌이다.

폐쇄 노력 불구 110년 버틴 집창촌 #곡절 끝에 주상복합 11월 착공 계획

지난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 시행 이후, 대구시와 경찰 등은 자갈마당 폐쇄를 위해 여러 정책을 펴왔다. 폐쇄회로TV(CCTV)를 출입로 4곳에 달고, 밤에 골목이 환하도록 가로등도 여러개 새로 달았다.

성매매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고사작전이다. 수시로 현장 단속을 하고, 문화예술 전시관인 ‘아트스페이스’를 자갈마당 한가운데 조성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2004년 60여 개 업소(350여 명)에서 현재 10여 개 업소(30여 명)로 덩치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완전히 홍등가 불을 끄진 못했다. 지금도 어두워지면 자갈마당에서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다.

이렇게 100년 넘게 버틴 자갈마당이 조만간 불을 끄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강력한 단속에 따른 폐쇄나 고사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떠밀려서다.

대구시는 22일 “지난주 민간개발 시행사인 도원개발이 자갈마당을 포함한 주변 1만9080여㎡ 개발을 위한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해 현재 심사를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도원개발은 자갈마당 일대에 4개 동으로 이뤄진 아파트 891세대(오피스텔 267호 별도)를 짓는다고 대구시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했다. 지하 6층, 지상 49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다. 착공 계획은 오는 11월, 완공은 2024년 6월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자갈마당을 포함한 사업 구간 토지 매입 동의율이 96.4%(1만8398㎡)에 이른다. 즉 자갈마당 대부분의 토지 소유주가 민간개발을 허락한 셈이다”고 했다.

그동안 도원개발은 자갈마당 일대 개발을 위한 토지 매입 과정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건물주와 성매매 업주 등의 반대가 있었다. 한꺼번에 토지 매입비를 다 달라고 요구하거나, 시세보다 높은 토지 매입비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익명의 한 대구시 간부는 “일부 세입자(성매매 업소 등)에게 이사비용으로 3000만원 정도를 주는 조건을 내거는 방법 등으로 동의를 구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홍성철 작가의 『유곽의 역사』에 따르면 자갈마당의 시작은 1908년 일제강점기 직전 일본인들이 만든 야에가키초(八重垣町) 유곽이다. 야에카키초는 줄임말인 ‘야에’ 유곽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당시에도 ‘자갈마당’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자갈마당은 당시 이 일대에 자갈이 많아 유래된 이름이다. 유곽을 만들면서 복숭아나무를 베어내고 황해도에서 가져온 자갈을 깔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기생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걸을 때 소리가 나는 자갈을 깔았다는 설이 있다.

자갈마당은 해방 전까지 성업하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떠나고 침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한 번 운영되기 시작한 유곽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947년 공창제가 폐지된 후에도 당국의 묵인 속에 자갈마당 운영은 계속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했을 땐 자갈마당에 여성들이 1000명 가까이 있었다고 한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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