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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토사수" 주민반발이 걸림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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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 중산층을 위한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이 초장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서울의 아파트값 폭등세를 가라앉히기 위한 맞불놓기 처방으로 정부가 극비작업 끝에 계획을 전격발표하자 그같은 비민주적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원친적인 비판에 경쳐 사전정보누설 소문이 나돌아 어려움을 겪는중에 대상지역인 분당·일산주민들이 「농토사수」를 내걸고 연일 반대시위·농성을 벌이고 나서 사업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 42만(분당)·30만(일산)대도시를 92년까지 불과 3년반만에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의욕을 지나 무모한 계획에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무리일뿐 아니라 너무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하고있어 신도시계획은 원점서부터 보다 신중하게 재검토되어야할 것 같다.

<주민반발>백지화요구 시위
『중산층만 사람이냐, 농민도 사람이다』 『강제는 공산당이나 하는것』 『대대로 물려받는 땅, 신도시가 웬말이냐.』
거리와 담벼락 곳곳에 신도시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나붙은 분당신도시 건설예정지.
10일 오후4시부터 마을단위로 계획설명 및 주민설득을 위한 임시반상회가 열렸으나 주민들은 냉담했고, 35곳중 9곳은 아예 모이지를 않아 반상회 자체가 무산됐다.
이날 반상회에는 경기도 간부들까지 대거 동원돼 주민설득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지난달 27일 신도시건설계획 발표이후 분당·일산지역에는 분노와 초조, 미래에 대한 불안감등이 뒤엉킨 가운데 양쪽 모두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집단단시위가 계속중이다.
8일부터는 일산읍 이장 23명, 분당지역 통·반장, 부녀회장등 마을지도급 인사 10명이 집단사표를 내는등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조직화돼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는 상태. 모내기철인데도 농민들은 일손을 놓고 연일 시위에 나서고있다.
분당신도시개발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 맹희재씨(72)는 『개발계획 백지화 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대상지역 4천52가구중 1천가구이상이 농사를 짓는 일산지역도 마찬가지.
『보상금을 받아봐야 농사지을 당이 없으면 먹고 살길이 없을뿐 아니라 주변 땅값도 이미 오를 만큼 올라 대체농지 확보도 어렵기 때문』이라는게 그 이유중의 하나.
10마지기 논농사를 짓고 있는 백석1리 주민 김영호씨(43)는 『그동안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천직으로 생각하며 농사를 지어왔다』며 『아파트옥상에서 농사를 지을수는 없지 않느냐』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 심영근교수(농경제학)는 『농토가 아니고는 달리 먹고살 방법이 없는 농민들에게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되다』며 『농민생존권 차원에서 농지를 택지로 전환하려는 계획은 재고돼야한다』고 했다.
심교수는 『농지가 다른 땅에 비해 보상비 및 건설비가 싸게 먹히겠지만 다른 생산재와는 달리 농지는 영원히 쓸 수 있는 것인 만큼 경제적 효율성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며 『농지를 대규모 주거용지로 전환, 잠식하는 것은 기본산업인 농업육성에 정반대되는 일』이라고 말하고있다.

<세입자문제>"값싼 방 못구해"
땅을 가진 농민들외에 전체주민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세입자·무허가건물주들의 반발정도도 마찬가지. 교통이 서울과 가까운데 비해 방값이 보증금 1백만∼2백만원에 월세 5만∼10만원정도로 헐한 이곳이 신도시로 바뀌면 마땅한 살곳을 찾을수 없기 때문.
2∼3개월분의 이주대책비로는 이미 50%이상 오른 주변지역 셋방을 얻어 나갈수 없고 임대아파트를 준다해도 관리비 때문에 들어가 살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들중 상당수는 70년대초부터 서울 청계천·모래내등에서 철거당한 가슴 아픈 경험을 갖고있어 정부시책에 대한 짙은 불신감과 감정적 앙금이 남아있다.
무허가로 집을 짓거나 빌려 영세공장을 차리거나 비닐하우스 경작을 하는 주민들에게는 철거는 곧 ▲값싼땅 ▲값싼 노동력 ▲값싼 집을 한꺼번에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확실한 생계보장이 없이는 반발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보상문제에 대해서도 일산지역 주민들은 『이 지역이 서울 인접지인데도 절대농지로 묶여 현재 7만∼10만원 안팎의 헐값인 논을 정부가 다른지방의 논과 비슷하게 3만원 이하에 매입하려는 것은 개발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싼값에 땅을 뺏으려는 의도』라며 분개하고 있다.

<무리한 계획>초고속 건설 무리
분당일대 5백40만평에 12만5천가구를 짓고, 일산 4백60만평에 8만채를 지어 각각 인구42만명, 30만명 규모의 전원도시를 92년까지 건설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계획.
이같은 계획은 그러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용지매수등 착공단계에서부터 늦어질 우려가 예상되고 있을뿐 아니라 초고속건설공정에 따른 무리가 불가피, 쾌적한 전원도시의 조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
빡빡한 일정에 따라 공사를 강행할 경우 자재·인력·재정난이 겹쳐 부실·졸속의 우려가 있을뿐 아니라 정부계획자체가 상·하수도, 도로등 기반시설을 주택건설과 병행한다는 작전이어서 초기 입주자들에게는 「제2의 상계동」과 같은 생지옥이 예상되고있다.
서울대 권태준교수(환경계획)는 『30만∼40만명 규모의 도시를 불과 2∼3년만에 짓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자칫 제2의 상계동·목동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통문제>서울교통난 가중
가장 큰 걸림돌은 교통문제. 정부는 분당쪽에 5개도로 36.5㎞, 일산방면에 4개도로 44㎞를 신설 또는 확·포장하고 이에 필요한 3천8백10억원의 예산은 개발이익으로 충당한다는 계획.
그러나 이들 도로들은 모두 신도시에서 서울 장지·수서·수색등 서울외곽까지의 연결에 그치고 서울도심구간도로에 대한 대책은 없어 시내 구간의 혼잡이 더욱 가중될 전망.
현재 2∼6차선인 분당∼장지동간 6㎞도로는 10차선으로 확대되지만 이 도로와 서울시내를 연결하는 송파대로는 8차선이며, 일산에서 성산대교쪽으로 달려온 차도 6차선에서 4차선의 강북도로로 진입하게 돼있어 병목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며 지금도 동맥경화증을 앓고있는 판교인터체인지∼한남대교사이의 4차선 경부고속도로는 교통체증이 최악의 상태에 이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도심에서 12㎞ 떨어진 상계동에서 러시아워때의 도심진입시간이 1시간이상 걸리는 실정에 비추어 각각 20㎞거리인 신도시에서의 서울 출·퇴근이 1시간대 이내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자가용 출·퇴근을 전제로 한 도시계획은 어렵다』는 입장이나 신도시건설 자체가 중산층을 겨냥한 것이므로 이에 걸맞은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다.
도로와 함께 개발이익으로 건설될 전철도 서울외곽의 기존노선에 연결하는 것으로 그치는 현재의 계획으로는 시내구간의 수요가중을 초래, 도심을 직접 잇는 별개노선이나 추가노선 건설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집중된 의견이다.
3호선 양재역∼성남의 연장노선 자체가 지금의 성남인구만을 고려한 것으로, 신도시인구 흡수가 , 전제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분당∼잠실의 23㎞가 새로 건설될 경우 잠실∼서울도심의 2호선은 정체가 심해 순환전철로서의 기능발휘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상수원확보>저수지 1곳 없어
하루 15만∼20만t이 필요한 상수도 수요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정수장 설치·배관부설에 따른 엄청난 비용·시간과 함께 인근에 마땅한 취수원이 없는 것이 바로 장애요인.
일산의 경우 한강하류의 취수는 시내를 통과하는 배관부설과 수질문제로 어렵고 임진강도 군사적 측면과 장거리 배관문제로 어려운데다가 인근에 30만명을 충당할 저수지등도 없는 실정.
정부는 이에 따라 팔당댐에서 물을 끌어온다는 계획에 따라 수도권 5단계 광역상수권에 포함시킬 계획이나 30㎞가 넘는 장거리수송에 따른 소요재원 충당과 건설기간 확보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또 ▲상수도는 90년2월부터 91년6월까지 ▲도로는 90년3월부터 91년10월까지 ▲전철은 90년3월부터 92년3월까지 주택건설과 병행해 건설한다는 방침이지만 상수도의 경우 ▲위치선정에 3개월 ▲타당성 조사 및 수질검사 6개월 ▲실시설계 6개월 ▲실제공사기간 18개월등 최소한 33개월 이상을 잡아야하며 그 이후에 이뤄져야하는 주택건설도 시공∼준공까지의 실제공사기간만 최소한 1년반 이상이 필요해 계획의 실현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력·자재난>건자재 파동우려
단시간내에 대규모 건설사업을 벌이는데 따른 물량부족도 실제공사과정에서 차질 요인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게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
공사인력도 하루 5만∼6만명 정도의 건설기능공이 필요하나 현재로서는 2만명정도의 동원도 어려워 제3국의 값싼 인력도입까지 논의되고있는 실정이나 이 경우 국민감정이 허락하지 않고 일이 끝나고도 귀국하지 않는등 부작용이 우려돼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실정.
철근·시멘트·판유리·위생도기등 자재도 물량부족에 따른 가격파동이 우려되고 있으며 총 통화량의 9%에 달하는 4조원의 천문학적인 사업비 조달도 문제.
민간업체가 합동개발방식으로 참여하는 이 사업에서 선투자되는 1조원의 분양선수금은 정부의 획기적인 금융지원책이 없는한 자체자금만으로는 조달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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