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평생직장」개념이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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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경제발전의 중요한 동인으로 지적되어 왔던 평생직장 개념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수 있지만 경제분석가들은 일본기업의 특유한 내부구조, 즉 연공서열에 입각한 평생직장 개념을 빠뜨리지 않고 거론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일본 젊은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직업관은 이전의 평생직장개념이 이미 구시대적 발상임을 반영해주고 있다.
대학을 마치고 일본굴지의 세라믹콘덴서 제조회사에 취직한 30대의 「고바야시」란 샐러리맨은 4년후 카메라제조회사로 전직한 뒤 지금은 조그만 컴퓨터회사에 근무중이다. 그는 『수입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바야시」씨의 말은 평생직장이 제공했던 신분보장과 안정된 소득이 더 이상의 메릿이 될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까지 1년동안의 전직자는 2백36만명. 이는 전년도에 비해 34.9% 증가한 수치다.
또 출판사인 학생원호회의 조사에 의하면 대학졸업생의 과반수가 한 직장에 계속 근무하는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전후일본의 기업들은 평생직장 개념에 입각, 숙련된 노동자를 지속적으로 확보할수 있었고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승급제도는 종업원들이 안심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것.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진 것은 일본인들이 그동안 「경제동물」이라는 수모를 들으면서 이룩한 경제적 성과로 소득수준이 향상됐고 이에 따라 일보다는 여가와 삶의 질에 더욱 눈을 떴기 때문이다.
철저한 연공서열제도로 일정한 직위이상의 승진이 어렵거나 근무시간이 빡빡한 대기업을 마다하고 그렇지 않은 중소기업으로 옮기는 것은 이러한 변화된 직업관의 단면을 보여준다.
경제번영의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가 줄어들어 전직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있다.
일본기업의 수적·양적 팽창으로 산업 각 부문에 노동력이 부족한 사실도 전직을 쉽게 고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일본의 직장인들은 소득수준이 높아졌고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를 옮길수 있으니 한 직장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작년에 15년동안 근무한 출판사를 그만두고 보험회사에 취직한 중년남자는 다시 주5일 근무 직장을 구하고 있다면서 『60세가 되면 팩시밀리와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해변휴양지로 이사해 여생동안 낚시와 일을 즐길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이 직장관이 변하고 전직현상이 두드러지자 전직예정자를 위한 신종사업도 등장하고 있다.
전직자를 위한 전문잡지가 그 예인데 그중 하나인 도다지는 ▲나쁜 감정을 남기지 않고 직장을 떠나는 방법 ▲사표를 쓰는 방법 ▲면접점수를 잘 따는 방법 ▲실업보험금을 타는 방법등을 소개해준다.
일본의 기업들도 변화하는 추세에 맞춰 과거 종신고용 개념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일본기업의 26%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 고령자에 대한 임금부담등을 이유로 들어 종신고용제도는 없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 조사결과는 밝히고 있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일보다는 여가에 더욱 관심을 갖게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일본경제의 특수한 분석대상이었던 평생직장개념이 흔들리고 일본인들의 일에 대한 집착이 느슨해지는 것은 새삼스런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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