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베트남은 우리 편" 구애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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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빠른 경제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는 베트남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한때 베트남의 적국이었던 나라들이 지금 와선 경제.군사 파트너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는 모습이다. 베트남은 미국과는 1960~70년대, 중국과는 79년 전쟁을 치렀다.

뉴욕 타임스는 19일 "고도 성장으로 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을 경제적 파트너는 물론 군사적 동맹국으로 삼으려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미.중 고위 인사들 베트남으로=최근 미국과 중국의 고위 관료와 기업인들이 베트남을 자주 찾고 있다. 미국은 4월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을 대표로 한 의회 대표단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달 초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전 종전 31년 만에 양국 간 전면적인 군사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은 베트남 장교들을 위탁 교육하고, 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군사 장비와 부품을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11월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다.

중국의 고위 관료들도 대거 베트남을 찾았다. 차오강촨(曹剛川) 국방부장은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가 열린 4월 하노이를 방문했다.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도 이달 베트남을 방문해 "올해 양국 교역은 100억 달러(약 9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40% 늘어난 액수다.

◆ 미.중, 베트남에 대거 투자=미국과 중국은 베트남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고 있다. 미국 기업 인텔은 2008년 가동을 목표로 6억 달러를 투자해 호찌민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미국 오토바이 업체인 할리 데이비드슨은 '오토바이의 천국' 베트남에 곧 전시장을 열어 현지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의 은행.보험.통신회사들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의 투자는 주로 석탄.보크사이트 등 원자재와 도로.철도 건설 등에 집중되고 있다. 하노이 외곽에서 직원 600명 규모의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인 사업가 천궈후이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임금이 중국보다 25~30% 싸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중국 생산 업체가 베트남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60달러다.

베트남은 최근 5년간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4%에 달할 정도로 고도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은 8.4%였다. 베트남 기획투자부는 20일 "올 상반기에도 7.5~7.6%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외국인 투자다. 지난해엔 모두 40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2004년보다 80% 늘어난 수치다.

◆ 균형 잡는 베트남=중국은 아시아 맹주로서의 역할 확대를 추구하고,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산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톤누찌닌 베트남 의회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은 "균형을 잘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미국에 너무 의지하거나 중국에 숙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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