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3차통상협상도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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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통상법 슈퍼301조와 관련한 이번 한미통상협상은 양국 회담사상 가장 길고 끈질긴 토론의 하나로 기록될 것 같다.
미행정부의 우선협상대상관행(PFP) 및 우선협상대상국(PFC) 지정절차에 앞서 워싱턴에서 세번째로 열린 고위통상실무회담은 당초 11,12일 이틀간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틀 모두 새벽4시까지 지속된 회담은 주말인 13, 14일에도 심야회의로 길어졌고 15일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좀더 얘기해야할 시간이 아쉬운 한국측 대표단은 워싱턴시내 일본식당의 도시락을 주문해 미측 대표단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회담을 진행시키기도 했다.
마침 14일 이곳 「어머니날」은 가정적인 미국인에게 큰명절이지만 미측 대표들도 잠깐 집에 들렀다가 회담장에 복귀하는등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다.
지난달 11∼13일, 25∼26일의 1, 2차회담에서와 달리 이번 3차회담의 주쟁점은 한국의 외국인 투자정책이다. 물론 최대난제는 농산물시장개방 문제였지만 양측 이견고수 입장이 확고해 첫날 얘기로 더이상 논의에서 젖혀버린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정부가 취한 조치를 불과 며칠만에, 그것도 외국의 압력에 눌러 손질을 가하는 일은 도저히 할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오렌지등 최근 한국농산물개방예시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은 품목을 추가해 달라는 미측요구를 명백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초 농산물시장 개방, 특별법상의 수입제한등 국산화시책완화, 외국인 투자제한시정등 3개 분야의 전반적 협의 진전 정도에 따라 한국을 PFC로 지정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태도였던 미국은 한국의 이같은 단호한 입장에 따라 농산물 문체는 논외로 처리함으로써 일단 포괄협상방침을 수정한 셈이다.
그러나 나머지 부문중 신약·신기술보호를 위한 수입금지등 국산화정책에 대해서는 한국이 선선히 양보를 함으로써 큰 논란이 없었으나 외국인투자정책에 대해서는 오히려 1,2차 회담때보다 경화자세를 보임으로써 논란이 집중됐다.
한국으로서는 농산물에 비해 이 분야의 융통성은 수월하다고 생각했었으나 막상 내부사정이 곤란하다는 사실에 부닥친 것이다. 미국은 투자인가 심사절차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외국인 투자기업의 내국민 대우등을 주장하는데, 막상 한국의 실정은 중소기업고유업종·산업합리화업종 등으로 국내업체에 대해서조차 복잡한 시책을 쓰고 있는 판이니 이런 미희망사항을 들어줄 수가 없다는게 한국측의 입장이었다.
투자문제에 미국이 집요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절실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단 협상에 임하고 있는 팀들로서는 지정은 추후판단할 문제이고 우선은 미요구사항을 최대로 확보, 목표를 달성하는게 급선무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측이 쉽게 융통성을 보이고있는 국산화정책부문은 미국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이기 때문에 기왕 농산물에서 얻어낼게 적다면 투자부문의 성과가 커야한다는 계산이다.
한편 한국이 침식을 걸러가면서 협상을 물고늘어지는 것은 대외의존도가 큰 경제구조상 통상협상에 좌우되는 경제실익이 크게 걸려있는 때문이지만 이와 아울러 국내 정치 및 한미국민감정에 미치는 영향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시민마저 PFC를 거론, 관심을 쏟고있고 대미시장개방조치를 강자의 압력에 대한 굴복으로 보는 시각등을 고려할때 PFC지정에 앞선 협상은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사태를 다소 완화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행히 만약 협상대상국 지정에서 제외되는 경우에는 「제2의 일본」으로 대한 인식이 악화돼가고 있는 미국의 전반적 시각도 개선할 수 있는 찬스라고도 볼 수 있다고 한국측 협상팀은 설명한다.
실제로 국산화정책 및 외국인투자부문의 협상만 잘되면 슈퍼301조에 의한 미행정부의 조치를 한국에 대한 「우선협상대상국」지정이 아닌 「우선협상대상관행」 지정으로 막아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한국측은 일단 기대를 거는 눈치다. 그렇게 될 경우 농산물시장폐쇄가 우선협상대상관행으로 지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국무성등도 정치적 고려를 바탕으로 이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희망·추측은 아직 속단할 수 없는 단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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