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한 미사일 발사 … 미국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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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의 발사가 임박했다고 미국과 일본 정부가 확인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대포동 2호의 사거리가 6000km에 이르고, 핵무기 탑재 능력을 가진 대륙간탄도탄(ICBM)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이번에도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을 예단하기 어렵다.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발사한다고 '가정'하고, 이를 8년 전의 대포동 1호 발사와 비교하여 양자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 이번 사건의 정책적 함의, 그리고 바람직한 문제 해결적 대응 방향을 생각해 보자.

우선, 대포동 1호와 2호 발사의 유사점은 미국이 북한과 이뤄낸 국제적 합의를 북한을 통제하는 틀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대북압박을 강화하고 있다고 북한이 인식하고, 나름대로 '미사일 발사'라는'채찍'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1998년 럼즈펠드 위원회 보고서와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사건을 통한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을 엄중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미국의 북한'범죄국가'론과 대북 금융제재를 바탕으로 한 북한의 정권교체.체제붕괴 압박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두 경우 모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의도는 미국과 관계를 완전히 끝내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이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 북한의 대미정책 목표가 일관되게 조속한 6.25 전쟁 종료, 평화협정 체결, 관계 정상화 달성이었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대포동 2호를 개발, 시험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98년에 비해 지금은 북.미 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있으며, 부시 정부는 과도한 이데올로기로 인한 분열의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뒤떨어져 있다. 다른 한편, 북한은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를 통해 미국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지금은 대미 태도가 매우 방어적이고 완강하다. 또한, 98년 대포동 1호 발사가 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을 끝낸 후 김정일 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등극을 자축하고, 국가의 강력한 힘을 과시해 민심을 추스르는 국내정치적 의미도 컸던 데 비해 이번 대포동 2호 발사는'대미 압박'의 성격이 훨씬 더 크다.

이상의 유사점과 차이점들은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가 북.미 관계 등 국제관계에서 매우 엄중한 정책적 함의를 갖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는 미국이 대북 주요 현안을 해결하는 데 외교적 협상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북한은 핵무기 보유와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아예 굳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북한 핵과 마찬가지로 미사일도 협상을 통한 '주고받기'식 해결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물론, 부시 정부가 단기적으로 대북 직접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이미 대폭 증강됐고, 이라크전 실패, 이란 핵문제 부상,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 외교안보 정책의 실패에 대한 민주당의 공격, 중간선거와 대통령 선거 등을 고려하면 부시 정부는 중장기적으로는 대북 협상을 하는 외에 다른 수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시 대통령은 칼 레빈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15일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제안한 정책을 받아들여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단일하게 조정된 대통령의 전략'을 개발해야 하며, '고위급 대북 특사'를 임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미국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 돕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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