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리모델링은 '화장' 이었는데 요즘 리모델링은 '성형 수술' 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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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에 요즘 실망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재건축 규제 강화에 따른 반사이익이 예상됐으나 의외로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리모델링으로 변신한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도 따뜻하지 않다. 하지만 사업이 활기를 찾을 조짐도 보인다. 새로운 리모델링 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재건축에 대한 미련이 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발 안 먹히는 리모델링=지난해 9월 주민들이 추진한 첫 리모델링 사업장인 서울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방배에버뉴(옛 삼호 14동)가 입주를 시작했다. 같은해 12월 용산구 이촌동 로얄이 두 번째로 새단장됐다. 하지만 이들 단지의 가격은 리모델링 덕을 별로 못 보고 있다.

에버뉴 63평형의 현재 시세는 11억원 선으로 10개월 새 5000만원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부동산정보협회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방배동 일대 50평대 이상의 상승률은 19%다. 지은 지 30년된 인근 삼호2차 60평형은 10억원에서 13억원으로 30% 뛰었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고 거래가 거의 없어 시세 형성이 제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이촌동 로얄도 58평형이 10억 선을 6개월째 유지하고 있고 75평형은 15억원 선으로 5000만원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이촌동 다른 단지들은 평균 20% 올랐다.

리모델링이 추진되면서 오르긴 했지만 평균 상승세와 별 차이가 없어 상승공사비를 감안하면 별로 남는 게 없다. 로얄아파트 인근 H공인 관계자는 "58평형의 경우 리모델링에 대한 기대감으로 입주 전까지 5억원가량 올랐지만 공사비 2억5000만원을 제외하면 평균적인 집값 상승분보다 높은 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한 티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단지는 복도식을 계단식으로 바꾼 뒤 발코니를 확장하고 내부 구조와 설비를 바꾼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에버뉴의 경우 방 중간에 벽체가 돌출되는 평면으로 바뀌었고 지하주차장을 만들지 않았다. 증축면적도 10평 정도로 현행 가능 범위인 전용면적의 30%보다 작다.

방배동 G공인 박모 사장은 "리모델링 수준이 개인적으로 수선한 정도에 그쳐 재건축으로 다시 지은 새 아파트에 비해 못한 데다 100가구 미만의 미니단지인 점 등으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양지공인 관계자는 "리모델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추진 중인 단지들의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재건축에 대한 미련이 강하다"고 말했다.

◆새 기술로 불씨 살리기=새로운 리모델링 평면이나 기술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그동안 리모델링 약점으로 지목된 게 수직증축(앞뒤 베란다 쪽을 확장하는 것)의 한계였다. 앞 베란다와 뒤쪽 복도를 확장해 발코니를 덧붙이다 보니 구조가 앞뒤로 긴 직사각형(터널형)이 돼 평면이 어색하고 환기.채광에도 문제가 있었다. 쌍용건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옆 가구와 붙는 벽 쪽에 가로.세로 4×6m의 대형 환기구를 만들었다. 리모델링이 추진 중인 도곡동 동신에 적용할 예정이다. GS건설은 아예 수평으로 넓히는 평면구조를 개발했다. 옆 가구의 일부까지 집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베이(방.거실 등의 전면 배치 방식)가 2베이(거실+방)에서 3베이(방+거실+방)로, 3베이에서 4베이(방+방+거실+방)로 늘어난다. 이런 수평 형태의 리모델링을 하려면 해당 동(棟) 옆에 증축할 빈 땅이 있어야 한다.

쌍용건설은 엘리베이터를 지하 주차장까지 연결하는 기술도 개발해 리모델링 중인 방배동 궁전아파트에 도입하기로 했다. 지금은 층 사이 빈 공간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지하까지 연결할 수 없다. 쌍용건설 양영규 팀장은 "30%까지 증축되고 내부 구조를 완전히 바꾸고 지하주차장을 갖춰 재건축과 별 차이가 없는 궁전이 준공되면 리모델링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기존 리모델링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기술이 리모델링을 주저하던 단지들의 이목을 끌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가운데 서울 송파구의 20년 넘은 단지들이 리모델링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재건축 허용 연한 강화에 걸려 재건축하려면 앞으로 5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단지들이다. 올 들어 리모델링의 주민 동의 요건이 5분의 4 이상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완화된 것도 힘이 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연구원은 "규제 등으로 재건축은 어려워진 반면 리모델링 기술은 나아지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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