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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콜링' 이소호 시인 "갑을 관계는 가족 사이에도 있다"

중앙일보

입력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이 15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이 15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있잖아 엄마, 배 안에 누굴 태운다는 것은 정말 징그러운 일이야 징글징글하지 그러니까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내가 아직 여자라는 건…"(엄마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

"이러니까네가그동안남자들한테차인거야나니까지금까지같이사귀는거야서운하게생각하지마연인사이에이런말도못해?(…)너생각하는건나뿐이야잊지마그러니까너오빠한테잘해"(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

제37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은 거침없이 직설적이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낱낱이 펼쳐 보이며 가부장제와 남녀차별, 폭력적인 일상 등에 거친 조롱을 뱉어낸다. ‘캣콜링’은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식의 성희롱을 뜻하는 용어다.

시인 김행숙은 김수영 문학상 심사평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맹랑하게 조롱하면서 허위의 옷을 찢고, 날카로운 아이러니의 칼 속으로 투신하여 기꺼이 찔린다"고 평했다. 조재룡 문학평론가는 "폭력의 중심부를 강타하고 실체를 드러내고 뿌리를 비판한다"고 했다.

캣콜링

캣콜링

15일 서울 서소문로 중앙일보에서 만난 이소호(31) 시인은 "여성 문제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일상적인 폭력을 다룬 작품들"이라며 "가족, 남자친구, 지인 등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갈등과 분노 등이 글감이 됐다"고 말했다.

시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등 가족 이야기가 많다. 가족 관계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시인은 "나는 집순이라서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많다. 그렇기에 집에서 가족들과의 갈등 상황이 가장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사회관계뿐 아니라 가족 관계에도 갑을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제기 위에 온 가족의 손바닥을 두고 못을 쿵쿵 박았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단다 가족이니까 아빠는 마지막으로 못 머리를 자르고 영원히 뽑지 못하게 두었다"(경진이네-5월 8일) 

특히 시인의 여동생 '시진'은 '동거' '서울에서 남쪽으로 여덟 시간 오 분' 등 시 곳곳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동생과 둘이 자취를 하던 시절 겪은 갈등이 시의 소재가 됐다. 시인은 "동생과 나는 한 살 차이인데, 고작 1년 차이로 부여된 역할과 책임이 너무 다르다. 큰딸은 무조건적인 인내를 강요한다. 이런 것에 대한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시인이 생각하기에 일상적인 폭력의 근간에는 '가부장제도'가 있다. 가부장제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일상적인 폭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동시에 가해자이고, 방관자이기도 하다.

"만약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면 자식들은 왜 엄마가 그런 사람과 결혼했을까 하며 엄마를 탓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만만한 약자에게 또다시 칼날을 겨누는 것이죠. 나 역시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에게 화풀이했고, 자라서는 엄마처럼 되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이소호 시인은 "일상적인 폭력의 근간에는 가부장제도가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기자

이소호 시인은 "일상적인 폭력의 근간에는 가부장제도가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기자

가부장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여성이다.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 등 시에는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지는얼마나깨끗하다고유난이야못생긴주제에기어서라도집에갔어야지"(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이소호의 시엔 생생한 대화체가 자주 등장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쉽게 잘 읽힌다. 실제로 작가는 가족이나 남자친구,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인상적인 말을 들으면 적어놓고 시로 풀어내곤 한다. 특히 말다툼할 때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말이 글감이 되는 경우도 많다. '경진이네-거미집' 역시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애미 잡아먹는 년‘이라는 말하는 것을 듣고 쓰게 됐다.

"엄마는 다리를 혐오했다 /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우리를 (…) 젖을 빠는 대신 우리는 자궁에 인슐린을 꽂고 매일매일 번갈아 가며 엄마 다리 사이에 사정을 했다 / 그때마다 개미가 들끓었다 (…) 엄마는 늘 내게 욕을 했어요 / 애미 잡아먹는 거미 같은 년이라고"(경진이네-거미집)

시는 작가에게 일종의 ‘분노 방출구’인 셈이다. 이렇게 시를 쓰고 나면 체증이 내려가듯 해묵은 분노가 해소된다. "만약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다 하고 살았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처럼, 시는 시인에게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주었다.

시집에는 '경진'이란 이름이 자주 나온다. 경진은 작가의 개명 전 이름이다. 시인은 "2014년 초 개명하기 전까지 나는 경진이었다. 타자화된 나를 찾고 싶어서 경진이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앞으로도 일상의 폭력에 주목할 예정이다. 시인은 "이제까진 자신과 가족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주목했다면, 이제는 좀 더 시야를 넓혀보고 싶다. 시대나 사회적인 폭력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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