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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최고령 공무원 '조용한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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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대북 경수로 사업을 총괄해 온 장선섭(71)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장이 19일 퇴임했다.

경수로 사업 초기인 1996년 2월부터 10년 4개월 동안 단장을 맡아온 그는 북한 경수로 사업의 산 증인으로 불려왔다. 그는 경수로사업을 추진해 온 국제협의체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집행이사회 의장도 함께 맡아왔다. 6년 가까이 집행이사국인 한국과 미국.일본.유럽연합(EU)의 비용분담이나 입장조율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의 퇴임은 KEDO가 1일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사업의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장 단장은 임기 막판에 경수로 사업 청산을 위한 준비작업에 힘을 쏟아왔다. 올 1월에는 경수로 부지에 머물고 있던 남측 근로자의 철수작업을 현장에서 지휘했다. 그는 "당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근로자의 신변안전이었고 억류 등 극단적 사태를 막는 게 급선무였다"고 말했다.

그는 온화한 성격과 원만한 대인관계로 유명하다. 40억 달러짜리 경수로 사업을 총괄하면서도 언론이나 여론으로부터 단 한 번도 질타를 받은 적이 없다. 국회에서도 추궁을 받거나 질책을 당한 적이 없다.

장 단장은 스스로를 복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현직 정부 공무원(차관급)으로 최고령이란 기록을 남길 정도로 열심히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난해 말 사퇴의사를 밝히자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직접 나서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고등고시 13회로 외무부에 받을 들여놓은 그는 미주국장과 주미대사관 공사, 덴마크.프랑스 대사를 지냈다. 그는 44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퇴임식에서의 짧은 인사말 외에 인터뷰는 일절 사양했다. 혼신의 힘을 쏟았던 경수로 사업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에서란다.

그는 "이제 퇴임하면 일찌감치 공직에서 물러난 친구들이 놀아줄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신포 경수로 부지를 개인 자격으로 꼭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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