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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프레임과 경제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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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이유가 필요하다.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어야 한다. 교육심리학에 등장하는 사울 로렌츠베이그의 ‘욕구불만 이론’을 빌리자면 이럴 때(욕구 좌절) 반응 방향은 세 갈래로 갈린다. 내 탓(내벌적), 남 탓(외벌적), 누구의 탓도 아닌 상태로 불만을 감추거나 공격 피하기(무벌적)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권의 아킬레스건은 경제다. 마음과 달리 참담한 경제 성적표를 받아든 정권은 남 탓하는 ‘외벌적(外罰的) 반응’을 택했다. ‘경제 실패 프레임’ 때리기다.

포문을 연 건 대통령이다. 지난해 말 여당 지도부와의 송년 오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해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일 신년 기자회견서에도 그런 느낌이 묻어났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여기에 가세했다. 지난 2일 JTBC 토론회에서 “경제 위기론은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 대기업 등 보수 진영의 이념 동맹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정치는 프레임의 전쟁터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을 장악하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담론에 대한 자신의 문제작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한다”고.

프레임은 틀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깨부숴야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의 틀에 스스로 갇힐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한다. 나만의 프레임에 빠져 있으면 다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도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 두뇌 안의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우리는 머릿속의 프레임을 그대로 남겨둔 채 사실을 무시하거나 반박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말했다.

‘경제 실패 프레임’의 반대편에 서 있는 대통령의 인식 체계로는 한국 경제에 대한 각종 경고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대통령이 프레임의 덫에 걸려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시즌 2’가 도래할 위험도 있다.

여기에 첨언 하나.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더 강화된다고 한다. ‘경제 실패 프레임’을 공격할수록, 사람들에게 ‘경제 실패’는 더 각인될 수 있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