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 유죄 부시에 정치적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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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란-콘트라 사건의 핵심인물인 「올리버·노스」전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 4일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부시」미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안겨졌다.
그는 중동에 인질로 잡혀있는 미국인들을 구출할 생각으로 적대국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는 한편 이 대금으로 의회의 금지를 무시해가면서 니카라과의 콘트라반군을 지원한 비밀공작의 실무총책으로서 86년 말 사건 노출 후 워터게이트 사건이래 최대물의를 몰아온 인물이다.
월남전 참전용사로 국가에 충성한 애국자이며 니카라과공산정권 타도에 앞장선 민주주의 신봉자로 미 우파의 열렬한 성원을 받아온 「노스」가 이번 재판으로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것이다.
미연방 워싱턴 지방법원 배심원들은 이날 그에 대한 12개 항목의 혐의 사실 중 3개항에 대해 유죄를 판결했다.
스캔들이 세상에 드러나자 관련비밀문서를 파쇄한 점, 무기거래 관련자로부터 1만3천 달러규모의 자택경보장치를 제공받은 점, 관련서류 파괴 등으로 의회활동을 방해한 점등이 유죄 항목들이다.
87년 봄 TV실황중계 속에 의회의 조사청문회가 열리고 작년 3월부터 그에 대한 기소 및 재판과정이 진행돼온 지난 2년 반 동안 그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엇갈려왔다.
지지자들은 대통령과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는 판단 위에 자기 희생도 각오한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반대자들은 그러나 충성스러울지는 몰라도 옳고 그른 것에 무분별한 얼뜨기 광신자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그를 기소한 검사는 「노스」를 「히틀러」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워싱턴에 거주하는 흑인 20명(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2주일에 가까운 심리 끝에 고심의 평결을 내리면서 찬반양측 주장이 계속 양립할 수 있는 심판을 한 셈이다. 「노스」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 즉 그가 비밀공작에 관해 의회를 속였다는 혐의사실을 배심원이 기각함으로써 지지자 측은 이 재판을 「노스」승리로 계속 주장할 수 있게됐다.
실제로 그의 사면운동을 위해 이미 1천만 달러를 뿌려온 지지자 측은 「부시」대통령에 대해 사면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대 쪽 논리 역시 그를 유죄로 평결한 재판을 계기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인질을 석방하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뜻에서 출발한 행동일지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 의회결정을 무시함으로써 국민들의 결정권을 박탈한 명백한 과오를 범했다고 이들은 「노스」를 비판하고 있다.
소수 권력 주변인물들이 민주절차를 무시함으로써 국민이 스스로 결정해야할 절차와 권리를 박탈 할 수는 없는 일이며 이번 재판은 이 같은 민주주의 원칙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정치적 요인까지 작용, 「노스」사건조사를 다시 물고 늘어질 생각이다. 의회청문회에 제출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과 문서가 재판과정에서 다수 밝혀진 점을 지적하는 의회는 의회 재조사를 관철, 「부시」의 스캔들 개입을 규명할 태세다.
「부시」는 부통령시절 온두라스를 방문, 콘트라반군에 대한 지원을 촉구함으로써 이들 반군에 대한 직·간접 지원을 금지한 의회결정을 무시했다는 게 민주당 측 주장이다.
「부시」 간여여부를 추궁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민주당 손아귀에 걸려 든 게 주한대사로 내정된 「도널드·그레그」 전「부시」부통령 안보 보좌관이다.
그는 의회 청문회 당시 비밀공작내용을 「노스」로부터 통고 받은 것은 86년이라고 말함으로써 「노스」의 재판 증언내용과 엇갈리고 있으며 그나마 「부시」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부시」방어 벽을 쌓고있다.
「부시」를 추궁하려는 민주당으로서는 우선 「그레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앨런·크랜스턴」상원의원을 선봉으로 한 민주당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말린·피츠워터」백악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크랜스턴」 의원이 「그레그」대사임명 비준을 소멸시키기 위해 동네방네 운동을 해오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유감스럽다』고 불쾌감을 표시하고 『비준 문제를 사전 완화키 위해 「그레그」씨가 「크랜스턴」의원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스」유죄평결은 「부시에게도 문제를 안겨주고 있고 그 곤경의 하나가 12일로 잡혀있는 상원 외교 위의 「그레그」인준청문회 파동으로 빚어질 공산이 커졌다. 【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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