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참담한 현실,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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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산 동의대사건은 하도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올 지경이다. 아무리 데모가 과격해지더라도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차마 믿고 싶지도 않은 사건이다.
학생이 경찰관을 납치해 감금하고, 구출하려는 경찰병력이 진입하자 도서관에 불을 질러 6명이나 불에 타고 떨어져 죽게 했다는 이런 사건이 어떻게 명색이 문명사회에서, 그것도 대학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이 반문명적·반인간적 비극을 개탄하면서 최근 우리사회를 불안과 혼란으로 몰고 있는 각종 집단 행동에 대해 당사자들의 근본적인 자성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의대 사건에서 단적으로 나타났지만 최근 시위 양상은 단순히 과격하다는 정도를 넘어 시외의 정말 목적이 무엇인가를 의심케 하는 폭력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경찰이 공포를 쏘아야 파출소를 지킬 수 있고, 시위대가 심지어 경찰 총기까지 탈취해 가는 현상을 보면 집단행동이 의사표시가 아니라 폭력으로 경찰력을 압도하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경찰에 이기면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폭력시위를 하는 숨은 목적이 이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가자는데 있는 것인가. 도대체 화염병이나 돌로, 또는 사람 숫자로 경찰을 이기려 하는 자체가 잘못이다.
동의대 사건의 경위만 봐도 학생들이 연행 당한 동료의 구출을 위해 4차례나 파출소를 공격해 경찰이 공포를 쏘게 했고 연행 학생과 교환하기 위해 전경을 납치했다는데, 이는 시위가 아니라 일종의 「전투」를 방불케 한 일이다. 시위라면 정부의 정책을 바꾸게 하거나 특정 집권자에 대한 찬반의 집단적 의사표시여야지 폭력으로 경찰에 이겨 그 다음에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한마디로 폭력으로 국가를 이길 생각은 말아야 한다.
화염병·휘발유·신나 따위의 「시위무기」가 대량 사용되면 될수록 그것을 규제하는 당국의 공권력발동은 정당화될 수밖에 없고, 시외대의 폭력이 커질수록 대응하는 공권력의 힘도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뜩이나 경색되고 경화되고 있는 시국양상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한다. 경찰도 사람인지라 분노와 불만의 감정폭발을 일으킬지도 모르고 정부는 더욱 강력 발등의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충격이 비록 크지만 사태를 수습하고 오늘의 이 난국을 극복하자면 역시 냉정한 자세와 이성적 대처를 하는 길 뿐이다.
동의대의 이번 사건은 소상하게 수사해 응분의 처벌과 조치를 내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경찰의 임무수행에 동요가 오거나 다른 시위진압과정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과격 세력과 학생운동권은 이번 사건을 큰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폭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폭력은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해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시위를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화염병과 돌이 없는 시위를 해야 한다. 국민적 분노가 화염병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선까지 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사회가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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