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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자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운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6세가 되던 어느 여름날 아침, 대기에 있는 별장에서 무심히 집어든 신문에 이은 왕세자 전하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이방자 여사는 깜짝 놀랐다.
『이 왕세자 전하와 약혼을 하다니.』 신문을 들고 있는 손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평화롭던 아침의 정적과 햇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천둥 번개가 그의 인생을 내려친 것이다. 그리고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4년 전에 출판된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 『세월이여, 왕조여』를 보면 방자 여사와 영친왕 이은 공의 정략결혼은 이렇게 본인도 모르게 결정되었다.
당시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되어 고노에(근위) 보병 제2연대에 배속되어 있었던 이은 공은 일요일마다 방자 여사의 집을 방문했다..
키는 작은 편이었으나 어깨 폭이 넓어 퍽 믿음직스럽고 인자해 보였던 이은 공. 어려서부터 고국을 떠나 육친의 정도 모른 채 볼모의 땅 일본에서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 과묵하고 온후한 왕세자 전하를 자주 대하자 방자 여사의 마음은 어느덧 왕세자 전하에게 이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내가 시집가는 곳은 전하의 따뜻한 마음 옆인 것이다.』
실제로 이방자 여사의 생애는 영친왕 전하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한 여인으로서 사랑과 행복도 느꼈다. 『사람들은 나를 비운의 왕비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낙선재 뜰에 서서 회고해보는 나의 지난날들은 마냥 비운만은 아니었다. 긴 폭풍우 속에서도 가끔 한 조각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보이듯이 여인으로서 사랑과 행복이 있었다. 무지개 같은 꿈과 희망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방자 여사는 남편의 조국을 자신의 조국 못지 않게 사랑하기도 했다. 『나는 2개의 조국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 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회고록의 한 구절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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