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엔 노사 인식 일치|김진<정치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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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치솟기만 하는 아파트 값이 저소득층에 짙은 우울의 그늘을 던져주면서 우리 사회는 부와 빈의 격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가진자」와 「못 가진자」의 대립 구조속에서 증폭되는 좌절감이 우리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27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정당 주최의 경제대토론회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놓고 계층간의 커다란 시각차이를 드러내 가시 돋친 설전이 벌어졌다.
문제제기는 구본호 한국경제연구원(KDI) 원장의 경고성 호소로 시작되었다.
우리 경제의 병리적 현상을 차분한 논리로 짚어가던 구 원장은 결언 부분에 이르러 목소리가 상기됐다.
구 원장은 『이미 1백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1백20, 1백30을 가지려고 발버둥치므로 부동산 투기가 날뛰고 있고 이는 좌경혁명 의식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방치되면 소수의 가진자 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1백 마저 김일성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 원장이 『집권당인 민정당과 그들의 지지 기반인 가진 자들이 자기 살을 깎는 아픔으로「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끝맺자 박수가 쏟아졌다. 노동계 대표들은 「가진 자의 양보」를 요구했다.
배무기 노동경제 연구원장은 『더 챙기려고 하는 사용자의 욕심이 노동자를 과격하게 만든다』고 했고 김악기 전국연합 노동조합 연맹위원장은 『투기용 부동산만 잔뜩 가지고 있는 기업이 근로자의 임금인상요구에 인색한 것은 도덕성의 상실』 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사용자측의 반론도 거셌다. 홍광 기계공업 협동조합회장은 『오늘날 무리한 임금인상 주장과 과격한 노동쟁의에 기업인들은 사업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 이라며 『정부는 공권력을 강력히 동원해 이른바 민주노조 개입을 막아야한다』 고 주장했다.
정부측의 이형구 경제기획원 차관은 노사 분규로 인한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 노사 쌍방의 자제를 요청했다.
이 차관은 『올해 들어서만도 노사분규로 2조원 이상의 생산차질이 발생했다』며 『근로자들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노사 형평상 사용자들에게만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할 수도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4시간에 걸친 토론은 팽팽한 시각 차이만을 드러낸 채 아무 결론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참석한 사람 모두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위기상황」이라는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은 「인식의 공유」가 문제 해결에의 통로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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