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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우리 모두 처음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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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아뿔싸. 택시 파업인 걸 잊고 있었다. 약속시간까지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카카오 택시가 잡히질 않는다. 카카오 블랙을 불러야 하나. 지하철을 타면 늦겠지?

당혹해 하던 차에 ‘카카오T’ 앱이 카카오 카풀로 전환된다. 금세 차 한 대가 잡혔다. 요금은 1만원. K사의 전기차다. 카풀 때문에 파업인데 카풀을 부르다니.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차가 도착했다. 뒷문을 열자 카시트와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다.

조수석에 올랐을 때 남자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흘렀다. 아무 말이나 뱉어야 했다. “오늘 택시가 파업이라… 카카오T 앱이 카풀로 전환되네요. 하하… 이거 저도 처음이라…” 남자가 말했다. “아… 저도 처음이라… 이거 어떻게 하는 거죠?”

30대 중반의 남자는 스마트폰을 쥔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카풀 크루(카카오 카풀 기사를 일컫는 말)가 된 뒤 처음 사람을 태웠다고 했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앱에서 탑승 확인을 눌렀고 화면은 내비게이션으로 전환됐다.

기자 : 댁이 어디신데요?

남자 : 남양주예요. 갑자기 콜이 떴는데 실수로 잡아버렸네요.

기자 : 연말에 강남 거리가 많이 막힐 텐데요. 많이 돌아가셔야겠는데요.

남자 : 그러게요. 와이프가 아기 간식 사 오랬는데 늦겠네요.

공기업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전기차에 관심이 많아 세 번째 전기차를 구매했고 호기심 반, 용돈벌이 생각 반으로 카풀 크루가 됐다고 했다.

기자 : 낯선 사람 태우는 게 무섭지 않으세요? 사실 저도 택시보단 좀 걱정이 되던데요.

남자 : 좀 그렇긴 해요. 승하차 사고라도 나면 보험 문제도 좀 애매하고…. 지금 보니 수수료도 20%나 되네요.

변수가 있겠지만 택시로 이동했을 때 예상시간보다 20분이 더 걸렸다. 운전이 서툰 건 아닌 듯했는데 긴장한 탓인지 급정거나 위태로운 차선변경도 있었다.

택시보단 저렴했지만 조금 불안했고 약속시간엔 늦었다. 남자는 8000원을 벌었고 부인에게 한 소리를 들었을 거다. 4차 산업혁명인지, 공유경제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누군가는 밥그릇을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불확실한 성공의 열매를 꿈꾼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한다 해서 해피엔딩이 되진 않는다. 법으로, 제도로 정확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사실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모두 처음이라.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