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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유니콘-싱가포르]싱가포르, 핀테크 창업 땐 최대 33억원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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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싱가포르 '원노스' 지역 내 스타트업 단지에 붙어 있는 회사 안내 표지판. 원노스는 싱가포르 정부 투자회사인 JTC가 매립지 5만6000㎡ 부지에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한 곳인데, 여기에 840여 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이상재 기자

싱가포르 '원노스' 지역 내 스타트업 단지에 붙어 있는 회사 안내 표지판. 원노스는 싱가포르 정부 투자회사인 JTC가 매립지 5만6000㎡ 부지에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한 곳인데, 여기에 840여 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이상재 기자

싱가포르의 화끈한 스타트업 지원

싱가포르국립대학(NUS)에 다니는 한국인 구하림(24)씨와 김도훈(25)·박세현(여·23)씨는 2017년 초 한 팀을 이뤄 NUS기업가센터가 주최한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 3위를 차지했다. 참가자들이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순위에 따라 창업 자금을 대주는 행사였다.

스타트업 천국 싱가포르 #국적 가리지 않고 창업자들 우대 #로봇산업 1억 투자하면 3억 지원 #동남아 창투자금 절반 8조 유치 #지난해 기준 ‘1조 기업’ 8개 탄생

구씨 팀은 중국·말레이시아 등 타국 출신으로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직장인이나 학생이 한두 달가량 휴가를 다녀올 때 여유 공간이 있는 사람에게 이삿짐을 맡기는 사업을 구상했다. 한쪽은 주택 임대료를 아끼고, 다른 한쪽은 자투리 공간으로 수입을 올리는 공유경제 모델이다. 구씨 등은 창업 지원금 1만 싱가포르 달러(SGD·약 820만원)를 받아 ‘킵(KEEP)’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너 달 새 기숙사·가정집 등에 이삿짐 보관 50여 건을 알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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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종잣돈에 컨설팅 비용까지 얹어줘

하지만 이내 제동이 걸렸다. 임대주택 거주민은 수익활동을 할 수 없다는 싱가포르 주택법 때문이었다. 싱가포르 시민 상당수가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김씨는 도리 없이 사업을 접었다.

구하림씨(가운데)와 김도훈(오른쪽)·박세현(왼쪽)씨가 자신들이 개발한 개인 짐 보관 공유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구하림씨 제공]

구하림씨(가운데)와 김도훈(오른쪽)·박세현(왼쪽)씨가 자신들이 개발한 개인 짐 보관 공유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구하림씨 제공]

흥미로운 대목은 그 다음이었다. NUS로부터 “남은 지원금으로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라”고 권유받은 것이다. 현재 세 사람은 애초 입상 프로젝트와는 전혀 관계없는 관광안내 챗봇을 개발 중이다. 구씨는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국적 가리지 않고 밀어주는 것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한 번 밀어주면 계속 지원하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포 캄 웡 NUS 교수는 “단순히 창업을 장려하는 수준을 넘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며 “스타트업 프로젝트는 상황에 따라서 궤도 수정이나 변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규제OUT과 관련된 모든 중앙일보 기사는 이미지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해도 연결이 안되면 이 링크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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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화끈한 지원과 개방성이 싱가포르 스타트업 정책의 첫 번째 특징이다. 초기 스타트업에 창업 종잣돈 말고도 싱가포르 정부는 법률·재무·환경 등 창업에 필요한 7개 분야에서 각각 700SGD씩 4900SGD(약 400만원)를 컨설팅 비용으로 별도 지원한다. 대학 때 창업하면 사무실도 거의 무료고, 마케팅에도 개인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조건은 단 하나다. ‘회사 지분 33% 이상을 싱가포르인이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업종에 따라 특정액 이상의 매출을 올릴 때까지 세금도 전혀 없다. 2014년 물류 스타트업 닌자밴을 창업한 라이 창 웬 최고경영자는 “해외 지사를 설립할 때 임금의 20%를 정부가 지원한다”고 소개했다.

동남아 1위 중고품 앱 ‘캐로우셀’ 배출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업종이라면 실탄 지원은 더 늘어난다. 로봇 스타트업에 대해 싱가포르 정부는 민간 투자금 1SGD당 그 세 배인 3SGD를 매칭 펀드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가 허브로 부상하고 있는 핀테크 산업의 경우 최대 400만 SGD(약 32억7000만원)를 지원한다. 정부가 나서서 ‘창업 용광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싱가포르 국영기업인 JTC가 조성한 원노스지역 안에 있는 스타트업 단지. 이상재 기자

싱가포르 국영기업인 JTC가 조성한 원노스지역 안에 있는 스타트업 단지. 이상재 기자

싱가포르 기업청(엔터프라이즈 싱가포르)은 2012년부터 ‘스타트업 SG’라는 스타트업 지원 종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3000개 가까운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과 임직원, 투자유치 단계, 고용 상황 등을 정부가 데이터베이스화해 투자자에게 일목요연하게 제공하고 있다. 2012년부터 5년간 스타트업 SG를 통한 기업 인수합병은 80건에서 174건으로, 투자 유치 금액은 1억3640만 달러(약 1500억원)에서 13억7000만 달러(약 1조5300억원)로 급증했다. 엔터프라이즈 싱가포르의 카산드라 웡은 “이 같은 지원 정책 덕분에 싱가포르는 불과 5년 만에 세계 12위권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갖춘 도시로 부상했다”고 자랑했다.

핀테크 기업만 480여 개…아시아 허브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1200억원) 이상 유니콘은 지난해 기준 8개다. 한국은 같은 시점 3개였다. 특히 싱가포르는 핀테크와 블록체인 분야의 아시아 허브 자리를 꿰찼다. 2017년에만 480여 개의 핀테크 기업이 2억3000만 달러(약 257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암호 화폐를 통한 기업공개(ICO)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미국·스위스와 함께 ICO 3대 강국으로 떠올랐다.

싱가포르 유니콘 기업으로는 전자상거래 업체 라자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게임업체 SEA, 말레이시아에서 본사를 옮긴 교통 플랫폼 그랩, 여행 액티비티 플랫폼 클룩 등이 꼽힌다. 캐로우셀과 프러퍼티 구루, 닌자밴 등 유니콘 후보 기업도 여럿 된다. 2012년 창업한 캐로우셀(Carousell)은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다국적 스타트업으로 컸다. 한국의 ‘중고나라’처럼 인터넷에서 중고품을 거래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시우류이가 22살 때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것이 창업 계기가 됐다. 지금은 홍콩·호주·인도네시아·대만 등 7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기업 가치가 5억 달러(약 56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누토노미는 싱가포르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시험 운행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싱가포르에서 첫 시범 서비스를 한 것은 그만큼 교통여건이 우수하고, 미래 자동차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싱가포르 원노스에 있는 누토노미(NuTonomy) 사무실. 누토노미는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의 시험운행을 시작한 회사로 유명하다. 이상재 기자

싱가포르 원노스에 있는 누토노미(NuTonomy) 사무실. 누토노미는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의 시험운행을 시작한 회사로 유명하다. 이상재 기자

미국 스타트업 분석업체인 CB인사이츠에 따르면 2012~17년 싱가포르는 664건, 72억 달러(약 8조원)를 유치해 아세안 국가(1343건)의 스타트업 투자 절반 가까이를 쓸어갔다.
앞으로 그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싱가포르 정부의 100% 투자회사인 주롱도시공사(JTC)는 원노스 지역(약 5만6000㎡)에 2014년부터 스타트업 산업단지인 ‘JTC 론치패드’를 조성했는데, 40여 개국 840여 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싱가포르는 추가로 2곳의 스타트업 단지를 개발 중이다. 제2, 제3의 캐로우셀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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