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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페이만 월 5억 명, 중국 핀테크 달려가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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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핀테크 기업 앤트파이낸셜. [사진 앤트파이낸셜]

중국 핀테크 기업 앤트파이낸셜. [사진 앤트파이낸셜]

“좋은 말로 하면 강제로 해외 진출을 당했고 나쁜 말로 하면 추방당했다.”

미국·중국 등 IT 결합 금융 대세 #페이팔 P2P 결제 연 340억 달러 #한국만 규제 탓 핀테크 뒤처져 #신용카드로 더치페이 가능 기술 #국내 첫 개발하고도 승인 못 받아

지난달 31일 들른 홍성남(49) 팍스모네 대표의 사무실은 성인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좁았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자를 포함해 14명이 일하는 사무실을 강남에 둔 적도 있었는데 회사 사정이 어려워 3년 전 공유오피스로 옮겼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사무실 캐비넷에서 검은색 표지의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냈다. 그가 "회사의 보물"이라고 표현한 책을 펼치자 각종 수식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홍 대표는 “국내 최초로 개발한 신용카드 간 지급결제 시스템 프로그램 코드를 기록한 책”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스타트업인 팍스모네는 2007년 신용카드를 활용한 개인 간 지급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신용카드를 활용해 원하는 상대방에게 경조사비 등을 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신용카드로 '가상의 돈(선불전자지급수단)'을 사서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축의금으로 10만원을 보냈다고 가정하자. 이를 받은 친구는 월말 카드 결제대금에서 1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면 된다. 물건이 오가지 않았지만 신용카드가 결제수단으로 쓰였다. 이는 세계 최대 전자 결제 플랫폼 페이팔 등에서 차용하고 있는 서비스다. 홍 대표는 "개인 간 중고거래는 물론이고 동호회비나 직장인 점심 더치페이(각자 계산) 등으로 서비스를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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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모네는 일찌감치 시스템 개발을 끝냈음에도 일방통행 도로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정부의 금융규제에 홍 대표는 가속페달 한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했다. 금융위원회가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5항을 들며 '불법' 낙인을 찍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가 사용자 측에 직접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면 신용카드사도 가맹점 지위를 갖게 되는데, 여신법상 가맹점은 물품이나 서비스 제공 없이 신용카드 거래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품이나 서비스 제공 없이 카드로 결제해 송금하는 구조에 금융위는 '카드깡'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시에는 물건이나 서비스 제공 없이 결제만 하는 것이 온라인 카드깡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답변했다"며 "계좌 이체 방식의 결제기술 등도 나와 있어 3년 전과 달리 현재 시점에서 카드로 개인 간 거래를 하는 것이 얼마나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팍스모네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선 정보기술(IT)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핀테크(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합성어)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금융위가 제동을 걸고 있는 기술은 해외에서는 일상이다. 미국의 전자결제서비스 업체 페이팔이 P2P(개인간) 결제 서비스 '벤모'를 통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벤모에서 이뤄진 결제 총액은 340억 달러에 이른다. 박창욱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사무부국장은 "새롭게 등장한 핀테크 기술은 기존 오프라인 기술과 다름에도 관련 규제는 오프라인에 멈춰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간편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마저 금융규제 벽에 가로막혀있다. 결제 한도가 제한된 카카오페이로는 200만원이 넘는 물건은 결제할 수 없다. 카카오페이를 비롯한 국내 간편결제에는 여신기능도 없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물건을 구매하는 세계적인 추세와 달리 국내 핀테크 기업의 사업 영역 확장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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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는 해외에선 대세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핀테크 산업에서 가장 앞선 국가로 꼽힌다. 알리바바가 만든 알리페이는 2011년 5월 제3자지급결제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은 매달 5억명이 쓰는 서비스가 됐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세계 10대 핀테크 기업 중 4개가 중국 태생이다. 30위권 내에 중국 기업은 8개, 미국 기업은 7개나 포진해 있다. 한국은 '토스'를 서비스 중인 비바리퍼블리카가 28위에 턱걸이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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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권역별성별연구팀 연구원은 "중국 정부는 기존의 금융 인프라와 서비스를 보완해 시장 내 모든 주체가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포용적 금융'을 실현했다"며 "규제를 완화해 먼저 산업을 육성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취했다"고 말했다.

기업 컨설팅업체 어니스트 앤 영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핀테크 사용률은 32%로 12위에 불과하다. 1위 중국(6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도(52%), 영국(42%), 브라질(40%), 호주(37%)가 2~5위를 차지해 핀테크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한국은 스페인(6위), 멕시코(7위), 홍콩(11위)에도 뒤져 핀테크 분야에서만큼은 개발도상국인 셈이다.

핀테크산업협회 자문변호사인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한국 정부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일단 해보고 발견된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안 된다고 우선 정지 시그널을 보낸다"고 말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2년 늦은 금융혁신 위한 '모래상자 놀이터'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는 핀테크 산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바닷가나 놀이터 모래밭에서 집을 만들거나 성을 쌓는 등 놀이를 하는 것에서 따온 이름이다. 샌드박스 공간 안에서는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모래상자 놀이터처럼 규제 없는 환경을 조성해준다는 의미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영국,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에서 운영되며 효과를 증명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2016년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핀테크 스타트업 선별 및 육성을 시작했고 싱가포르도 영국을 밴치마킹해 싱가포르 통화청(MAS) 산하에 핀테크 전담팀을 두고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핀테크 규제 샌드박스 기업에 선정되면 기존 금융 관련법상 인·허가 및 지배구조, 업무범위 등 규제에서 테스트 기간인 2년 동안 면제된다. 테스트 기간은 한차례 연장할 수 있어 최장 4년까지 규제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에 안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법이 시행되는 4월 혁신금융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 특례 기업으로 선정되기 위한 과정이 또 하나의 정부 심사 제도 역할을 하는 셈이어서 '그들만의 놀이터'가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창업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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