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경제위기론, 기득권 지키려는 보수 이념동맹이 퍼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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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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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 가장 화제가 된 정치권 인사는 누구였을까. 구글트렌드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가리킨다.

문 정부 최저임금 정책도 옹호 #정치권 “사실상 정치 행보 재개”

여권의 차기주자인 이낙연 총리나 박원순 서울시장과 비교해도, 야권 주자인 황교안 전 총리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비교해도 유 이사장을 향한 세인의 관심이 가장 많았다. 관심이 확 뛰었던 지난달 23일은 ‘노무현 재단 2018 회원의 날’ 행사가 열렸던 날로, 그는 이때 “유튜브를 시작한다” “정치 안 한다. 차기 여론조사를 할 때 내 이름 빼라”는 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정작 유 이사장의 행보는 정치의 한복판을 향하는 듯하다. 그는 2일 밤 JTBC 토론회에 출연해 “경제위기를 조장하는 건 오염된 보도 때문”이라며 “경제 위기론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 대기업의 이념 동맹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요 발언은 이랬다.

“지금 보수정당, 보수언론,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신문, 대기업을 광고주로 하는 언론의 경제면 기사에서 퍼뜨리는 경제 위기론은 기존 기득권층의 이익을 해치거나 해칠지 모르는 정책을 막아버리려는 시도다. 이런 경제 담론을 주도하는 분들이 자신의 이익 때문에 거짓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들이 만나는 사람, 삶의 터전, 공부한 것, 주고받는 정보가 편향돼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유 이사장의 이런 주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유 이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선 “빠르게 최저임금이 인상된 데 따른 경영 압박을 느끼는 기업들도 많이 있을 거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받는 노동자가 500만 명 이상이라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소득주도 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과 철학에 대해선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건 굉장히 힘들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이 기성 언론과 각을 세우고 진영 갈라치기를 하며 논지를 펴가는 방식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닮았다. 임기 초반부터 언론을 적대시했던 노 전 대통령은 이후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기자실을 폐쇄하면서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유 이사장의 발언은 최근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 침체 상태에 빠진 친문 핵심 지지층에 새로운 정치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유 이사장이 4일 자정부터 매주 금요일 한 차례씩 진행하는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도 비슷한 맥락일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시사 내비게이터(안내자)’를 자임한 유 이사장은 방송 취지에 대해 “혹세무민하는 보도가 넘쳐나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정리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선출직·임명직 공무원 안 한다”던 유 이사장이 경제 위기론 반박을 계기로 사실상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언론과 가짜뉴스 때문에 힘들어졌다는 프레임을 문재인 정부가 계속 쓰고 있는데, 유시민 전 의원이 선봉에 서서 싸우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치 행위”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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