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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1심 판결문<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재판부는 이 법정에서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과 참회하는 피고인의 눈물을 함께 보면서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다시 한번 느꼈고,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의견이 전화 또는 편지 등의 형식을 통하여 있었다.
그 내용 가운데에는 피고인의 범행의 수단, 결과에 비추어 마땅히 피고인을 극형에 처하여야 한다는 의견은 물론이고,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엄청난 짓을 시킨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그를 따르는 북한 공산주의 집단이 저주받고 처벌받아야 하며 피고인은 한낱 꼭두각시 노릇을 한 연약한 여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인도적인 면에서 극형을 피하여야 하고 우리 국민 모두 진정으로 사망한 1백15명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함과 아울러 피고인을 자유 민주주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품안에 따뜻하게 안아서 함께 북한 공산주의 집단을 쳐부수는데 동참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북조선은 피고인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고향으로 지금도 부모형제가 살고있고 전에는 목숨을 바쳐도 아갑지 않은 조국이었으나 대한 민국에 와서보니 김일성·김정일이 인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고 인민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부자의 인생을 살아주고 있는 지옥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이 사건 범행으로 유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죽어 마땅하다고 참회하고 있고, 한편 수년간을 사랑하고 보고싶은 가족들과 헤어져서 머나먼 이국 땅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동하다가 새로운 희망을 안고 돌아오던 중 참변을 당한 근로자들의 영령이 위로 받고 그들 가족의 한을 푸는 길이 꼭 피고인을 엄계하는 것만 인가에 관하여도 이 재판부는 법과 형벌의 목적에 관한 근본적 고뇌에 싸여왔다.
위에서 본 여러 사정에 터잡아 피고인 개인에 대한 연민의 정과 피고인이 속한 북한 공산주의 집단 및 피고인의 판시 범행에 대한 분노의 정을 함께하여 판단컨대, 피고인은 7년8개월간의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대남 공작원으로서 88서울 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하여 대한민국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하라는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이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1백15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자로서 위와 같은 범행은 그 동기에서뿐만 아니라 그 수단·방법에 있어서도 세계 각국이 국체협약에 의하여 범죄로 규정하고 엄중한 형벌로써 다스리는 운항중인 민간 항공기에 대한 폭발물 테러를 자행한 지극히 잔인하고도 악랄한 소행이라 아니할 수 없고, 또한 우리 앞에 가로놓인 분단된 국토의 북쪽에는 지금이 순간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헌법의 기본질서로 하고 있는 대한 민국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 공산주의 집단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보면 우리는 감상과 낭만적인 민족주의나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실상을 모르는 이상주의적 통일론에 안주할 수 없다 할 것이고 우리 민족의 영원한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도 깨어 있어야 할 때임을 숙지하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고 보면, 위와 같은 엄연한 현실 앞에서 이 재판부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어떠한 폭력 집단이나 세력도 단호히 응징하여야 한다는 뜻에서 사형을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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