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경시…노사가 강경일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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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병원노사분규가 국민보건에 불안을 주고 있다. 병원노사분규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쟁의에 여러 제한이 가해지고 있는데도 현재 세브란스·한양대·서울대·이대병원 등 대규모 종합병원을 포함한 13개병원에서 부분파업·태업·준법투쟁 등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 분규는 특히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등에 노사간의 견해차가 큰 데다 경영권·인사권과 관련된 대립이 노사협상에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최근엔 병원간 연대투쟁 움직임까지 나타나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주요 병원분규의 현항과 전망을 정리해 본다.
◇연세의료원=자연호봉승급분 추가지급 등을 요구하며 연세의료원 산하 신촌·영동세브란스병원 노조원 6백여명이 17일부터 닷새째 매일 오전7시∼오후6시까지 신촌병원 외래진료소 1층로비에서 태업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환자진료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7차례 단체협상을 벌여온 병원·노조양측은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측이 2월21일 노동부에 쟁의발생신고를 냈으며, 3월8일 양측이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 8개항을 일단 수락해 교섭이 일단 타결됐다.
노조측은 그러나 15일 병원측이 자연호봉승급분을 임금인상분에 포함시켜 4월분 임금을 지급하자 이에 반발, ▲자연호봉승급분 별도지급 ▲3, 4년제 간호사간의 호봉격차를 2호봉에서 1호봉으로 줄일 것 등을 요구하며 응급실·수술실 등을 제외하고 태업농성에 들어갔다.
병원측은 이에 대해 『11일의 중노위 조정안에 따라 지급한 것이며 쟁의행위 참가자에게는 무노동무임금원칙을 적용하고, 노조지도부를 불법쟁의혐의로 당국에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인데 노조측은 『중노위 조정안은 유권해석일 뿐 강제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노사양측은 18일이후 노동부의 중재로 2차례에 걸친 협상을 가졌으나 서로의 입장만 되풀이 해 결렬됐다.
이에 따라 응급실·수술실 등을 제외한 병원업무가 일부 마비, 영동범원은 오전 업무만 하고 있으며 신촌병원은 신경과·피부과·소아과 등 몇 개과의 3O%정도만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병원측은 20일까지 4백50여명의 입원환자를 퇴원시키고 의대 4년생 1백여명을 진료에 보조케하는 외에 임상검사·환자급식 등은 외부용역을 주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환자들은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수술·입원이 연기되는 실정인데 『노사 양측이 환자는 무시한 채 서로 자기 주장만 내세워 강제 퇴원했다가 재입원해야 하는 등 시간과 정신·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노사 양측은 협상재개를 위해 노력중이나 노조측이 「선요구조건수락」을 고집하는데 대해 병원측이 「먼저 농성을 풀고 대화하자」며 맞서고 있는 가운데 노조측은 22일 오전 7시까지 타결되지 않을 경우 산하 5개병원 총파업을 경고, 파란이 예상된다.
◇한대병원=한양대 교직원노조와 같은 임금체계 등을 요구하며 3일부터 준법투쟁에 들어간 한대병원노조는 병원측이 경영적자를 내세워 노조의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20일부터 실력행사에 들어간 데 이어 24일부터는 전노조원의 본격태업을 준비하는 등 악화일로.
노사양측은 2월 24일 올해 단체교섭을 시작, ▲기본급 5만2천4백원 인상 ▲가족수당 (어른 1만5천원, 자녀 1만원) 신설 ▲급량비 (2만원) 지급 ▲직종별 단일호봉제 실시 등을 요구했으나 병원측은 『경영상태가 감가상각을 고려해도 매년 수억씩 적자가 난다』며 노조측 안을 거부, 기본급 3만2천6백원 인상만을 고려하겠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9백병상이 인가된 병원에 1천병상이상의 환자가 몰리고 있고, 외래환자가 하루 평균 1천5백여명에 달하는 병원에서 적자는 어불성설이며 수익금의 상당부분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고 병원측을 반박하고 있다.
14차례의 협상을 통해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자 노조측은 3일부터 준법투쟁에 들어가 ▲리번달기 ▲점심시간에 노래부르기 ▲사복착용근무 등을 해오다 병원측이 협상테이블로 나오지 않자 19일 노조원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총회를 갖고 단체투쟁을 결의, 사무직·용원직·의료기사·약무직 노조원 5백2O여명이 20일부터 단체 연월차휴가를 강행했다.
◇대구 동산병원=지난달 16일 쟁의발생신고를 낸 뒤 그동안 3차례의 노사협상이 결렬되자 노조측이 18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병원측은 그동안 입원환자 2백91명을 퇴원시켰고, 응급실·중환자실 등을 제외한 진료업무가 거의 중단위기에 놓여 있다.
노조측은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 13.9% 인상과 체력단련비 연 49만9천원, 위험수당 월3만원 지급 등을 주장하는 반면, 병원측은 임금 10%인상과 체력단련비 연15만원 지급안을 제시,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병원=난제인 임금협상이 1월 이미 끝나 현재는 단체협약안 경신을 놓고 단체교섭이 진행중이다.
2월9일부터 20일 현재까지 모두 18차례의 단체교섭이 벌어졌으나 총 58개항 중 ▲유니언숍제도도입 ▲노조 전임근무자 증원 (5명→8명) ▲사무기술직과 기능고용직간의 장기근속수당 차별 폐지 등 46개항이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노조측은 이에 따라 13일부터 근무복대신 사복입기·캡벗기 (간호사의 경우) 등 준법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24일 전체노조원 집회를 열어 단체협약안 수락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대병원=2월9일부터 20일 현재까지 20차례의 단체교섭이 진행됐으나 노사간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임금협상에 있어서는 노조가 기본급 7만5천여원, 급량비1만1천여원인상을 요구하는 반면,병원측은 기본급 2만5천원 인상을 제시하고 있다.
노조측은 파업까지 가는 극한상황은 원치 않는다고 밝히고 있으나 병원측은 노조측이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결국 파업까지 가는 상황도 예상하고 있다. <김영수·최천식·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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