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자에 숨진 강북삼성병원 의사…흉기 위협에 피하다 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12월 31일 오후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던 환자가 의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사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박해리 기자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12월 31일 오후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던 환자가 의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사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박해리 기자

강북삼성병원서 30대 환자가 흉기 휘둘러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A(30)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후 5시44분쯤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정신과 진료 상담 중이던 의사 B(47)씨를 흉기로 수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울증을 앓던 A씨는 피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 B씨는 환자가 갑자기 흉기로 위협하자 진료실 밖으로 도망치던 중 미끄러져 넘어져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흉기에 찔린 의사는 중상을 입은 상태로 응급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 치료를 받았으나 이날 오후 7시30분쯤 끝내 숨졌다. A씨는 간호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1일 중으로 부검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A씨를 경찰서로 이송해 정확한 범행 경위 및 동기에 대해 조사한 후 구속영장 신청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숨진 의사는 ‘한국형 자살예방 프로그램’ 개발자 

의사 B씨는한국자살예방협회로부터 ‘생명사랑대상’을 받는 등 우울증과 자살예방에 힘써온 인물이다. 특히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 개발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30일 인천에서는 손을 다친 지인과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온 30대 남성 C(34)씨가 의사 D(34)씨를 폭행해 불구속 입건됐다. C씨는 병원 측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D씨는 찰과상을 입었으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2018년 7월 초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손가락 골절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의사를 폭행하고 있다(왼쪽 원. 그는 의사가 웃음을 보였다는 이유로 ’내가 웃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청원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욕설을 하면서(오른쪽 사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사진 대한의사협회]

2018년 7월 초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손가락 골절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의사를 폭행하고 있다(왼쪽 원. 그는 의사가 웃음을 보였다는 이유로 ’내가 웃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청원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욕설을 하면서(오른쪽 사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사진 대한의사협회]

하루 2~3건씩 병·의원서 의료진 폭행 사고

진료실에서 환자가 의사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게 대한의사협회의 설명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31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진료실 폭행·폭언은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진료실이나 원무과에서 폭력을 행사한다. 특히 동네의원에서는 간호조무사가 폭력의 타깃이다. 정신과 환자뿐만 아니라 내과·외과 등 진료과도 구분 없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의료진 폭행·협박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의료기관 기물 파손과 의료인 폭행·협박으로 신고·고소된 사고는 893건이었다. 폭행(365건)이 가장 많았고 위협(112건), 위계·위력(85건), 난동(65건), 폭언·욕설(37건), 기물파손·점거(21건), 성추행(4건), 협박(3건), 업무방해(2건), 기물파손(2건) 순으로 의료행위 방해가 일어났다. 이 가운데 604건(67.6%)이 사건 가해자가 주취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2~3건씩 의료기관에서 의료인 위해와 기물 파손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7월에는 강원도 강릉의 한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한 정신과 환자가 망치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환자는 원장에게 “망치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구두로 폭행을 예고한 뒤 얼마 뒤에 병원에 들이닥쳐 실제 망치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체포했다가 다시 풀어줬고, 그 이후 다시 병원을 찾아서 “죽이겠다”며 망치를 휘둘렀다고 한다.

응급실 폭행은 더 심각…2017년에만 365건

최 회장은 “환자가 어려서부터 병원에 다녔는데, 질병 상태에 대한 의사의 진단이 달라지면서 경제적 불이익이 따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망 사건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다. 몇 년 전 대학병원의 비뇨기과 진료실에서 만성 전립샘염 환자가 진료에 불만을 품고 의사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의사가 끝내 숨졌다고 한다.

응급실 폭행은 더 심하다. 술에 취한 환자들의 의료진 폭행이 도를 넘고 있다. 2016년 263건, 2017년 365건, 2018년 상반기만 202건이 발생했다. 응급실 폭행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최근 응급실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9년부터는 응급실 폭행으로 의료진이 다치면 가해자는 징역형을 처벌받는다. 응급의료 종사자를 폭행해 다치게 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받는다.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을 줄여주는 ‘주취 감형’도 적용되지 않는다.

2018년 7월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의료기관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의료인 폭행사태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2018년 7월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의료기관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의료인 폭행사태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진료실 폭력사고 처벌 강화하는 법안은 낮잠”

하지만 일반 진료실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은 아직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최 회장은 “진료실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 대해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의료기관 폭력의 경우 반드시 최소한 벌금형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