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근거·활동 적법성놓고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문익환목사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재야단체·노동·학생운동에 대해 전면전 성격의 공권력을 행사하고 나서자 재야를 비롯, 정계·법조계·학계 등에서 「합수부」의 해체요구로 맞서고 있어 말이 많다. 수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디서 당하는지조차 때로는 몰라 당황하게 되고 더구나 잘못된 경우 법적 근거도 없는 한시기구여서 책임소재도 불분명하지 않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이나 안기부측은 현안의 복잡성 등으로 관계부처가 협조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수사권이 없는 기관의 자료를 활용하거나 다양한 수사대상을 다루기 위해서도 합동수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해체주장=평민·민주 등 야당들은 국회법사위를 소집, 합수부설치의 법적근거·활동의 적법성 등을 정부측에 따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서울대생들도 19일 「합수부해체」 등을 요구하며 시한부 동맹휴업을 결의했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대표간사 조준희변호사)은 15일 성명을 내고 ▲합수부는 법적 근거없이 구성된 것이며 ▲검찰의 독립과 경찰의 중립을 저해하며 ▲민간인 수사에 간여할 수 없는 국군보안사령부가 민간인수사에 간여하는 등 위법부당한 기구라며 해체를 주장했다.
서울대 김진균교수 등 학계·문화·종교계 등 인사 89명도 18일 시국선언을 발표, 『현정권이 국민들의 민주화요구를 외면하고 민주세력탄압으로 줄달음 치고 있다』며 합수부의 활동을 비난하고 나섰다.
검찰은 합수부에 대한 비난이 이처럼 거세어지자 19일 합수부설치의 법적근거 등을 설명하고 문목사·이영희교수에 대한 변호인의 접견을 허용하는 등 「불끄기 작전」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검찰주장=검찰은 합수부가 검사의 일반 및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197조와 검찰청법4조를 근거로 각 기관의 대공수사역량을 집결하고 수사지휘 및 공조체제를 확립, 좌익폭력세력의 발본색원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고 설명한다.
검찰은 또 보안사가 합수부의 비상설기구인 「정책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군수사기관과의 정보교환이 필요할 때만 참여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군수사기관도 군사기밀누설이나 군용시설방화·파괴 등 범죄에 한하여 군사법원법(2조·3조)에 따라 검사의 지휘를 받아 민간인을 수사할 수 있어 검찰의 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합수부 정책협의회에 보안사가 참여하는 것이 위법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합수부는 검찰을 중심으로 수사지휘체계를 확립, ▲동일사건에 대한 수사가 기관간에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등 공안수사기관간의 업무한계를 분명히 하고 ▲수사과정에서의 적법절차 준수여부를 감독·지도하기 위해 발족한「합법적」기구라는 것이다.
◇활동내용=합수부는 3일 발족과 함께 범민족대회·남북작가회담추진과 관련, 이재오 전민련조국통일위원장과 시인 고은씨 등 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9일에는 좌경이념서적에 대한 전국 규모의 압수수색을 실시, 51종 1만2백여권의 서적을 압수했으며 11일에는 전민련상임공동의장 이부영씨 (47)를 구속했다.
또 12일에는 이영희 한양대교수와 백악청 서울대교수가 문목사 방북사건과 관련, 합수부에 연행됐다가 이교수는 구속되고 백교수는 48시간만에 귀가조치됐다.
합수부는 또 13일 문목사를 구속한 데 이어 17일에는 분규가 장기화된 부천지역 4개사업장에 공권력을 투입, 1백78명을 연행한 것을 시작으로 불법 노사분규에 공권력을 개입하는 등 강경 대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합수부의 이같은 일련의 활동은 불법연행시비를 제외하고는 적법절차를 거치거나 준수해 방법론에 있어서는 5공때보다는 발전된 공권력행사라는 인상을 준 게 사실이다.
특히 안기부가 수사중인 문목사 방북사건의 경우 참고인자격으로 연행됐던 문목사의 세 아들과 백악청교수·임재경부사장 등은 모두 구금시한인 48시간이내에 귀가시켜 5공시절 안기부의 불법수사관행과는 대조적이었다.
◇접견·면회거부논란=검찰은 한승헌변호사 등 문목사·이교수의 변호인단이 피의자에 대한 접견거부를 항의하자 20일과 21일 2명에 대한 접견허용을 약속했다.
변호인단은 18일 문씨 등에 대한 접견이 되지 않자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12조4항과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자는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접견하고 서류 또는 물건을 수수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34조를 근거로 접견금지를 위법이라고 비난했던 것.
변호인단은 『공안당국이 국민들에게는 실정법준수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실정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변호인·가족의 접견·면회신청을 모두 들어줄 경우 수사에 지장이 생기므로 수사의 본질과 변호인의 접견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또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변호인의 접견권은 인정되지만 변호사가 수사과정에 입회하는 참여권을 인정하는 규정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따라 문목사·이교수의 기소때까지는 접견을 주장하는 변호인단측과 수사방해를 이유로 접견을 제한하려는 수사기관사이의 「접견권」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