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인상러시…"물가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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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들어 각종 공공요금과 독과점제품의 가격이 봇물 터지듯 인상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인상러시는 작년 이후 계속된 물가불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가뜩이나 심각성을더해가는 경기하강추세에 인플레기대심리가 어우러져 우리 경제를 스태그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확산시키고 있다.
정부는 당초 올해 물가억제목표를 5%(소비자물가)로 잡고 이 가운데서도 특히 통제가능한 공공요금은 원가상승요인이 있더라도 최대한 인상요인을 자체 흡수토록 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도 물가억제목표이내에서 인상폭을 누르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줄을 잇는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발표는 정부의 물가안정의지를 의심케한다.
그동안 오른 것만 해도 지난 2월 시외버스요금이 14.2%나 오른 것을 비롯, 철도하역료가 19.4%, 각급 학교공납금이 5∼8%가 올랐으며 19일에는 택시요금을 7월부터 평균 15.1%(소형)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긍요금이 아니라도 4월 초 원유값이 13% 인상돼 그 파급영향으로 유제품값이 21.4%나 올랐고 20일부터 맥주값이 5.9% 올랐는가 하면 내달 중에 소주값이 7∼8%정도 오를 전망이다. 또 품질고급화를 앞세워 7백원짜리 「한라산」담배가 5월 초에 선보일 예정이다.
물론 최근의 각종 제품가인상을 보면 그 나름대로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주·맥주의 경우 농촌지원시책으로 남아도는 보리를 주정원료로 사용하고, 또 보리수매가를 해마다 올린 결과 자동적으로 인상요인이 생겨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 원유가격도 85년 이후 4년간 동결해 온 결과 인건비·사료값상승으로 가격상승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하나 둘 고삐를 풀어주다 보면 과연 물가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점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물가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자세다.
택시요금의 경우만해도 정부는 지난 81년이후 8년간 동결해오면서 그동안 유가인하와 시간·거리병산제실시로 3%정도의 인상요인밖에 없다고 강조해왔다. 또 택시요금을 조정할 때는 반드시 제도개선을 병행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던 것이 택시업계의 노사분규가 격렬해 질 조짐을 보이자 하루 아침에 방침을 변경, 대폭인상을 결정했다.
택시요금은 물론, 지난 2월 시외버스요금인상과 4월초 원유값 인상도 따지고 보면 노사분규와 축산농가의 집단시위 예고앞에 정부가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정부는 일단 앞으로 공공요금조정을 오는 7월 전국민의보실시에 맞춰 의료보험수가 조정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철도·지하철·우편요금,상하수도요금 등 인상요청은 줄을 잇고 있어 이들 요금의 동결방침도 실천여부가 의문시되고 있다.
물가란 물론 인상요인을 눌러만 둔다고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가격구조의 왜곡과 결국 대폭 인상으로 더 큰 후유증을 가져오게 된다는 측면이 있다. 또 당면 경제현안 중 최대과제가 노사분규로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기자는 당국의 고충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최근의 인상러시에서 보듯이 실질적인 공공요금의 인상에 앞장서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물가정책에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아파트 투기억제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치 못해 인플레심리의 확산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무책을 나타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심각한 것은 앞으로의 물가전망이다.
작년 이후 물가상승패턴을 보면 그 밑바닥에는 통화팽창, 경기호황에 따른 일부 품목의 수급불균형, 임금인상 등이 근본요인으로 깔려 왔고 여기에 정치·사회의 불안정이 인플레심리의 확산에 가세, 그 확산된 인플레심리가 여기저기 구멍을 찾아 튀어오르면서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부추겨왔다 할 수 있다.
수급불균형이 심각하긴 하나 아파트값이 최고 평당 1천만원선을 육박하는 사태는 일종의「패닉」현상으로 볼 수 밖에 없고 그만큼 사회저변에 팽배한 인플레기대심리가 올해 들어서도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 각 사회집단에 소득보상적 욕구가 거세게 고개를 들면서 올해들어 각종 학원비·숙박·음식료 등 개인서비스요금이 큰폭으로 올라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걱정은 높은 임금인상이다. 연초부터 노사분규가 다발·대형화되면서 교섭을 끝낸 업체들의 임금인상률도 16.15%로 지난해 인상률(12%)을 크게 웃돌고 있다.
한은의 조사분석에 따르면 임금이 10%로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에 미칠 상승요인은 2.9%나 되고 있다. 2.9%인상은 올해 소비자물가억제목표선 5%의 절반을 넘는 것으로 기업들이 원가상승요인을 자체 흡수하도록 노력한다 해도 상당부분은 가격에 전가, 제품값 상승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원유값이 13% 인상됐는데 대리점들의 담합결과 시판백색우유는 21.4%가 오른 것이 단적인 예다. 물가는 어떻게든 추스려 잡아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사회가 안정과 균형을 회복해야 하며 정부·기업·국민들이 욕구를 절제하는 가운데 협력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이런 점에서도 사정은 갈수록 어려운데 정부 스스로 공공요금인상에 앞장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실추시켜서는 물가를 잡기도 어렵고 결국 올해 경제운용도 암초에 부딪치고 말것이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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