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과 ??상 사이-이인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통일과 새로운 북방관계에 대한 우리의 열기와 희망이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 하던 지난가을 어느 날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너무도 뜻밖의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서관 목록실 한복판에 북한의『로동신문』이 활짝 펴진채로 특별 전시되어 있지 않은가. 불과 그 몇 주전까지만 해도 공산권에서 간행된 전문 연구 서적조차도 금서 목록에 묶어 놓아 학생들에게 비교. 분석을 위해 읽히려 해도 불가능했고, 다른 신문이나 잡지들을 열람자들의 편의를 위해 찾아보기 쉬운 곳에 진열해두는 관례도 없던 도서관에서 유달리 『로동신문』을 그처럼 우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속이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개방도 단속도 무원칙>
이제는 그것도 옛 이야기다. 북한 간행물과 그것들을 복제·판매한 사람들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었고 그러한 단속이 어느 선에서 멈추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진작 그랬어야 할 일이라고 공안당국의 그러한 처사를 더욱 부채질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5공의 망령들이 되살아남을 걱정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개방과 갑작스러운 단속은 무슨 목적으로 어떤 원칙 위에서 수행되는 것이며, 무슨 효과를 거둘 것인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법적 상황과 반지성적 풍토는 분명 대한민국의 안녕 뿐 아니라 남·북한 민족 전체의 긴 앞날을 길게 바라보며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크게 걱정할 만하다.「좌경」이라는 현상이 사실이냐, 조작이냐를 따지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좌냐 우냐를 따지기에 앞서 이성으로 감정을 누르고 환상과 이상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사회 전반에서 극도로 쇠퇴되어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진정한 이념 논쟁이라는 것도 사실은 있어본 적이 없는 실정이다.
인간이 쌓아온 역사적 체험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나 깊은 철학적 통찰보다는 개개인의 체험과 직감적 현실 해석에 바탕을 둔 분노와 욕심만이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한국적 민주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주체사상이니 하는 탈을 쓴채 서로 으르렁거려온 것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체제를 부정하려는 세력이 생기고 있다면 그것은 왜 생기며, 어떻게 하면 없어질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지 물리적으로 그 뿌리를 뽑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통제는 북한 미화 우려>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라는 것과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룩해 놓은 독재체제가 소련을 위시하여 북한에의 접근이 자유로웠던 세계 모든 나라에서는 조소섞인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북한에 관한 외국 언론의 보도, 또는 학술적 연구 결과를 접해 보는 사람이면 다 안다. 북한 방문이나 북한에서 나오는 자료에의 지속적 공개접근은 북한에 대한 찬양보다는 오히려 비판, 또는 동정적 우려를 자아내는데 우리 젊은이들이나 젊은이를 닮은 어른들 사이에서는 세습적 독재체제를 유지해온 김일성이 흠모의 대상으로 부상된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설명은 우리사회 내부의 사정이 낳아 놓는 반발적 심리상태와 동족으로 우리의 애정 어린 관심의 대상이 됨이 마땅한, 북한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오랜 통제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이 쪽이 못 마땅하니까 저쪽을 미화해서 볼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여건이 여전히 존재하고, 저쪽은 천국인 듯한 환상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해설물들이 서점들의 서가를 메우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에 대한 유일한 직접적 증거가 되는 자료들을 다시 통제하려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을 공허한 낱말로 만드는 이외에 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
순수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은 오히려 경색된 독재체제하에서 발간되는 간행물들을 보고 그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게될 것이며, 반면에 심정적으로 이미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은 그쪽 간행물을 직접 보기 전에 이미 이쪽 아닌 다른 쪽의 것이면 아들에 의한 권력계승까지를 미화해서 보게 되어있다.
공산권의 간행물을 통제하는 이유로서 항상 내세워져 온 것은 우리 젊은이들은 아직 비판적 사고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에서 저들의 고도로 발달된 선전술이 작동하게 되면 위험한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사태는 이미 발생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은 언론과 정보, 그리고 교육 내용을 정치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체제 수호를 도모했던 제3공화국 이래의 우리의 몽매정치에 돌릴 수밖에 없다. 얼마나 극성스럽게 이데올로기와 국민윤리 교육을 외치며 좌경세력의 발본 색원을 장담했었으며, 그 결과가 지금 어떠한가.

<비판적 사고력 길러야>
1970년대와 80년대에 실시해서 그 역효과가 뚜렷이 증명된 지식인 통제정책을 지금 다시 되물이 할 여유를 우리 사회는 이미 가지고 있지 못하다. 허위의식 속에서 한발짝만 더 헛디뎠다가는 우리 모두는 어디에 떨어질 지를 모르는 절박한 실정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우리사회 내부에서 찾아내서 대책을 세워야하며 불만스런 현실의 개혁과 비판적 사고능력의 적극적 배양 양면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판적 사고능력의 배양이란 결코 하루 이틀에, 또는 한두 학년 사이에 이데올로기 교육을 통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판적 사고능력의 훈련은 기초과학의 육성이나 마찬가지로, 아니 보다 더 근본적으로 장기적인 교육과정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며 어느 체제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고, 어느 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 되도록 미리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사고능력을 일단 기르게되면 공통된 척도에 따라 모든 사물을 평가하게 되나, 역으로 비판적 사고력이 결핍된 사람은 감정에 솔깃한 것이면 현실인지 환상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방아들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실수를 범하게도 되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현실이 불만스럽다고 해서 그 이상 자체를 외면하면서 공산주의는 현실 아닌 이론과 선전에 맞추어 평가하는 좌측의 잘못도, 공산주의의 현실이 부정적인 면을 드러낸다고 해서 그 이상이나 신화가 가질 수 있는 강한 호소력조차 인정할 줄 모르는 우측의 이해 결핍도 극복되어야 우리사회는 엄청나게 불필요한 희생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교수·역사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