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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 월급상납' 범죄인지 모른 채 범죄자 된 이군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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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인지는 몰랐다.”

대법, 이군현 한국당 의원 집행유예 확정…의원직 최종 상실 #국회 보좌관 "월급 상납, 만연한 관행…범죄란 인식 없을 것" #비슷한 혐의로 항소심 중인 황영철 의원도 '긴장'…1심은 유죄

대법원이 27일 보좌진 월급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이군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상고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연합뉴스]

대법원이 27일 보좌진 월급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이군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상고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연합뉴스]

27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자유한국당 이군현 의원이 지난 5월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한 최후진술이다. 이 의원은 2011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보좌진 3명에게서 월급의 일부를 떼어 조성한 2억4600만원을 사무실 운영비로 이용하거나, 보좌진으로 등록하지 않은 다른 직원의 급여를 준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대법원이 원심이 내린 징역형을 확정하면서, 이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10년간 공직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8월에도 대법원은 보좌진에게 준 월급을 돌려받아 지역 사무실 운영 경비 등으로 쓴 혐의를 받는 최구식 전 의원에게 징역6월-집행유예 1년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최 전 의원은 2006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보좌진 월급 7190만원을 돌려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됐다.

지역사무소에 근무하는 야당 소속의 한 보좌관은 “이 의원이 정말 몰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행위가 의원직이 상실될 정도로 큰 죄인지는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워낙 만연하게 의원실 내에서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이른바 ‘보좌진 월급 쪼개기’는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왔다.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떤 의원은 보좌진이 그만두었는데도 그 사실을 일부러 1~2달 뒤 국회 사무처에 알려 그 기간의 월급을 챙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의원 사례와 유사하게 사무처에는 보좌진을 4급으로 신청해 놓고, 월급은 5급에 해당하는 만큼만 주면서 그 차익을 의원 활동비로 돌리는 경우도 예사였다. 심지어 자신의 보좌진을 다른 회사의 직원으로 등재시켜놓고 급여 명목으로 받는 월급을 사무실 임대료나 운영 경비 등으로 쓰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자정 노력은 있었다. 지난 2016년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좌진의 보수를 유용한 국회의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법안 처리 과정에서 결국 해당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에는 별도의 규정 없이 임금의 일부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여전히 보좌진 월급 유용은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지만 국회는 처벌 조항 없는 윤리실천규범만 두고 있다.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 제 15조에는 ‘국회의원은 그 보조직원을 성실하게 지휘·감독하고, 국회가 그 직원에게 지급할 목적으로 책정한 급여를 다른 목적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사실상 보좌진의 월급 상납 등 불법 행위가 이뤄지더라도 ‘근로자’인 보좌진이 ‘사용자’인 국회의원을 고발하기는 쉽지 않다. 해고당할 것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문이 나면 다른 의원실에 취업하기도 어려워진다. 여당 의원의 한 비서관은 “하나의 국회의원실은 국회의원이 회장인 하나의 회사나 다름없다”며 “그런데 이 회사는 다른 회사보다 훨씬 쉽게 회장이 마음대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비서는 “여전히 보좌진에게 ‘내 덕에 월급받는 것’이라고 하는 의원들이 많다”며 “의원뿐만 아니라 일부 오래된 보좌진들은 월급 상납을 ‘월급 나눠 갖기’로 당연하게 여겨 더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백혜련 의원은 “과거 지방의 넓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분들이 관행적으로 이와 같은 행위를 했던 것”이라며 “당연히 근절되어야 할 행위고, 국회 내에서도 자정 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재 국회 윤리특별위원장도 “한국당을 비롯해 각 당별로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윤리적으로는 물론 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니만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심 공판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심 공판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이 의원 역시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선고를 받으며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같은 당 황영철 의원의 항소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황 의원도 보좌진 월급 일부를 돌려받아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8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황 의원 측은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은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 부분이 있어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 6차 공판은 오는 16일 오후 3시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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