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우리 풀 우리 나무가 왜 소중한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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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들이나 산에 수많은 풀과 나무가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틴틴 여러분이 소풍을 가 무심결에 밟거나 꺾는 들풀.야생화.나무들이 하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랍니다.

틴틴 여러분, 우리 산과 들에 자라고 있는 풀.나무가 왜 소중한지 알아볼까요.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나고 자라는 식물을 한국의 자생식물이라고 해요. 미국의 것은 미국의 자생식물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거기에는 다른 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종도 포함됩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나라에는 약 4000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요. 그중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종은 약 400종이랍니다.

◆경쟁력 높은 토종='미스킴 라일락'이라는 게 있어요. 미국의 라일락 꽃나무 시장의 30%를 휩쓸고 있을 정도로 짙은 향기가 일품인 품종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겁니다. 미국인이 한국에 있는 라일락의 향기가 너무 좋아 종자를 받아가 상품화한 것이지요. '미스킴'이 붙은 것은 그 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은 성씨가 미스킴이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스킴 라일락을 세계 시장에 내놨다면 토종 이름인 '수수꽃다리'로 불렸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생식물에 눈을 뜨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특허료를 받을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토종의 중요성을 입증한 한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자생식물은 이처럼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것이 수없이 많아요. 꽃뿐만이 아니라 약용으로 쓸 수 있는 성분 등의 면에서 우수한 특성이 있는 것이 많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의 자원 전쟁에는 석유나 광물뿐 아니라 식물의 종 확보가 포함돼요. 여러 식물 종을 확보한 뒤 더 좋은 품종을 개발해 수출하기도 해요.

최근 외국에서 개발한 장미를 재배하는 국내 화훼농가들이 특허료를 내는 것만 봐도 식물 자원 전쟁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답니다. 그래서 각국의 식물학자들은 남의 나라에서 몰래 식물의 씨를 받아 자국으로 가져가기도 한답니다.

◆신약의 보고=열이 나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자주 먹는 아스피린은 인류 역사상 3대 명품 신약의 하나로 꼽혀요. 그 아스피린이 무엇으로 만드는지 아세요. 바로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드나무에서 뽑은 성분이에요. 아스피린을 만들어 팔고 있는 제약업체는 지금 벌어들이는 돈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나무 성분 하나 잘 골라낸 덕이지요. 세계에는 약 30만 종의 식물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그중 5% 정도만 성분을 제대로 알고 있어요. 나머지 95%에도 아스피린과 같은 명약을 만들 수 있는 성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자생식물도 물론 그럴 가능성이 크지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자생식물에 대한 연구를 별로 하지 않았어요. 민간요법이나 한약재로 쓰는 것 외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답니다. 너무 흔하다 보니 무심코 지나갔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어요. 자생식물에서 천연물 신약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여러 곳에서 연구를 시작하고 있어요. 화학 약품을 섞거나 변형해 만드는 화합물 신약은 실패율이 높고 부작용이 큰 데 반해 천연물 신약은 상대적으로 실패율이 낮고 부작용이 적은 것도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이 천연물 신약에 큰 관심을 갖는 배경이기도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야생 다래에서 알레르기에 효과가 아주 좋은 신약후보 물질을 뽑아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등 자생식물 연구가 활발해요.

자생식물이 이제 단순한 풀이나 나무가 아니라 한 국가의 경제적 자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지요. 유전자와 성분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와 성과도 덩달아 수직 상승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글=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사진=야생화 사진작가 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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