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교통 돋보기

착공과 착공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예로부터 새로 건물이나 도로 등의 건축을 시작하는 날은 경사 그 자체였다. 그래서 당일이나 그즈음에 많은 인사가 모여서 축하하고 공사의 성공을 기원한다. 이 자리가 바로 ‘착공식(着工式)’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많이 거행한다. 몇몇 문화권에서는 착공식에 쓰인 ‘첫 삽’들을 기념으로 따로 보관해 놓기도 한다. 착공식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완공일이 보다 예측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제대로 절차를 밟아서 착공식을 하게 되면 철도는 통상 5년 뒤쯤 완공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26일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은 상당히 특이하다. 착공식은 했는데 뭘 공사하는지가 불명확하다. 철도와 도로를 명시하기는 했지만, 어떤 공사인지는 정해진 게 없다. 철도의 경우 최근에야 북한의 경의선과 동해선 구간에 대한 남북공동조사가 끝났다. 대부분 육안으로 철도 상태를 확인한 정도여서 실제로 공사를 하려면 측량과 지질조사, 설계 등 많은 후속 절차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어느 수준까지 북한 철도를 현대화할지 합의된 바가 없다. 화물차가 다닐 정도인 시속 50~60㎞대로 개량할 것인지, 아니면 여객도 이용 가능하게 시속 100㎞ 이상으로 현대화할지를 정해야만 한다. 현재 북한 철도는 노후화가 심해 시속 30~40㎞가량 속도를 내는 게 고작이다. 도로도 어느 구간을, 어떤 수준으로 개량할지 분명치 않다. 겨우 한두 차례 현장 조사를 했을 뿐이다. 그래서 명칭이 착공식 대신 ‘착공 기원식’ 정도가 맞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27일 착공식을 갖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실시설계와 환경영향평가 등 중요한 행정절차가 상당수 끝난 건 맞다. 하지만 실제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용지 매입, 설계 감리, 공사 감리자 선정 같은 절차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들 절차를 다 끝내려면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5~6개월 이상 걸린다는 게 철도업계의 얘기다. 아직 삽을 뜰 형편이 아니다. 착공식을 공사 현장이 아닌 실내(일산 킨텍스)에서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서 “국토교통부가 ‘연내 착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홍보하기 위해 착공식을 무리하게 앞당긴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착공식은 경사스러운 날임에 틀림없다. 그 시설의 완공을 기다리는 주민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과는 차이 나는, 다른 목적이 앞서는 보여주기식 ‘쇼’가 돼서는 곤란하다. 이러다간 ‘착공식’이란 용어의 정의까지 바꿔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