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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상향을 꿈꾸고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차라리 혁명가를 닮았다. 이지러진 현실과 이웃의 고통과 하고많은 당대적 모순에 대해서 유난히 많은 느낌에 시달리고, 또 깊이 아파한다는 점에서는 더욱 비슷하다. 혁명가가 사회제도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면 예술가는 삶의 구체적인 면모에 대해서 비판적 시선을 던지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이러한 비판은 인간에 대한 남다른 뜨거운 사랑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후 1백년을 맞아 온갖 찬사와 경의를 받고 있는 네덜란드 화가 「반·고흐」 역시 예술가 특유의 비판적 현실인식 때문에 그토록 높이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후의 영광을 가져다 준 그의 그림들이 그려지기까지 그가 미쳐서 죽어버릴 수밖에 없었을 만큼 추악하고 비인간적인 세태와 어떻게 부닥쳐 나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찬 세상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깨끗한 영혼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이 현실을 즉각 바로 잡아주지 못한다는 데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이상향은 단지 하나의 영상으로써만 가능할 뿐이었다.
「고흐」의 절망은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이상향은 단지 꿈꾸고 노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의 「실현」을 보고자하며, 또 실질적으로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럴싸한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은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지를 한갖 망상에 가까운 차원으로 떨어뜨려 놓는다.
그렇지만 현실의 왜곡된 모습을 직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이상향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가 척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꿈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고, 현실을 부등켜 안고 소외된 이웃의 삶을 함께 나누고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은 기존의 체제와 가치관을 고수하고자 하는 세력들로부터 언제나 탄압과 핍박의 대상이었다.
예술가들은 이상향에 대한 특이체질에 가까운 그리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고자 하거나 도전하고자 하지 않는다. 아무리 현실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적일 경우에라도 그들은 인간의 꿈꿀 권리와 꿈을 노래할 권리를 사람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향의 구체적인 모습을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현실의 여러 국면을 비판적으로 다루게 되는 예술가를 미워함으로써 역사에 오명을 남긴 정권들은 항상 있어 왔다.
어떤 이유에서건 최근 화가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은 우리를 슬프고 우울하게 한다. 근본적으로 꿈을 노래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통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왜소하고 편협해진 권력의 집행자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우울하지만 말이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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