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울린 '붉은 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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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3일 밤 대한민국은 하나였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 이르기까지 길거리에 나온 250만여 명의 붉은 물결은 모두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의 함성을 토해냈다. 월드컵은 나이.성별.직업.지역을 초월해 '우리'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하는 감동의 대축제였다. 12번째 선수인 국민은 태극전사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박수와 탄식을 반복했다. 한국의 역전골이 작렬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환희의 극치를 만끽했다.

"그래 이 맛이야"
13일 밤 서울 상암동 월드컵구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이 전광판으로 중계되는 한국 - 토고전 경기 장면을 보며 화려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이날 상암구장에는 7만여명이 몰렸다. 김태성 기자

◆ 남대문부터 광화문까지 붉은 물결='거리응원의 메카'서울시청 부근엔 50여만명의 '붉은 악마들'이 모여 2002년을 방불케 했다.

시민들은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를 한목소리로 외치며 공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전반 30분 토고가 선취골을 터뜨리자 응원단은 순간 "아~"하는 탄성과 함께 깊은 침묵에 빠졌다. 하지만 붉은 악마들은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힘찬 응원을 보냈다. 이후 이천수가 시원한 프리킥을 성공시키면서 시청 앞은 단숨에 환희와 열광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어 안정환이 역전골을 터뜨리자 시민들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서로를 부둥켜 안고 환호했다. 일부 시민들은 태극기를 번쩍 들고 세종로 거리를 내달리기도 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폭죽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친구들과 함께 응원을 나온 염성천(27)씨는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이겼다"며 "너무 기쁘고 설레서 오늘 잠을 못잘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승리의 기쁨에 취한 시민들은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음악에 맞춰 꼭짓점 댄스를 추거나 사진을 찍으며 응원의 열기를 이어갔다. 붉은 티셔츠를 입고 응원에 동참한 외국인들도 한국팀의 선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친구 세명과 함께 야광 도깨비 뿔 머리띠를 쓰고 나온 미국 출신 영어강사 존(25)은 "이런 거리응원은 어느 나라에서도 본적이 없었다"며 "한국의 거리응원은 하나의 축제"라고 감탄했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광이 재연됐다. 오후 6시쯤부터 몰려든 시민들은 오후 8시반쯤엔 7만여명에 육박했다. 토고에 끌려다니던 한국팀이 동점골을 터뜨리자 시민들은 승리를 예감한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 모르는 옆사람과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관중들의 모습은 감격 그 자체였다. 빨간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나온 베트남인 주욘풍은 "한국팀의 투혼을 보며 아시아인임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안정환의 역전골이 나오자 경기장은 승리를 확신한듯 쉴새없이 "대~한민국"이 터져나왔다. 3남매를 데리고 나온 도영미(41.여)씨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애국심이 솟구친다"며 "학교 공부보다 이런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큰 공부가 될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장이나 길거리 대신 상암CGV등 영화관에 모여 단체응원을 하는 이들도 수십만명에 달했다. 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토고전 단체시청 이벤트를 열고 경기 시작전부터 영화 시사회와 약식파티로 흥을 돋구웠다.

[전국 종합]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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