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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에 성공하고 싶나? 폐업 시나리오부터 쓰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준혁의 창업은 정글이다(2)

국내 대표 외식 브랜드와 식당 300여개를 오픈한 외식 창업 전문가다.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식당을 컨설팅하고 폐업을 지켜봤다. 자영업을 희망하는 사람과 폐업위기에 처한 소상공인을 위한 대안과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상가에 폐업 후 새 주인을 찾는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이 상가는 수개월째 텅 비어 있다. [뉴스1]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상가에 폐업 후 새 주인을 찾는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이 상가는 수개월째 텅 비어 있다. [뉴스1]

오늘 아침에도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 들어서는 거의 매일 오래된 지인으로부터 무거운 전화를 받는다. 통화 내용은 식당을 창업했는데 망해 가니 내가 아는 곳에 매각해달라거나 아니면 살려달라는 것이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라 모른 척할 수도 없어 현장을 방문해 보면 이미 때는 늦은 경우가 허다하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해 몇 마디 물어보면 십중팔구 프랜차이즈 가맹점 계약을 맺고 창업을 해 오픈 첫 달부터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하고 계속 적자만 보다 급기야 폐업을 목전에 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한 번 등을 돌린 고객을 다시 오게 하기가 쉽지 않다. 메뉴와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고 어설픈 리모델링이나 컨설팅만으로 무너진 식당을 재건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것이라면 처음부터 나한테 물어보고 창업하지 그랬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절망에 빠진 친구에겐 의미 없는 말이라 몇 가지를 처방했다.

무권리라도 빨리 가게를 처분해 더 이상의 손실금이 발생하지 않는 게 급선무라 프랜차이즈 본사가 친구 매장을 인수하게 조치했다. 그런 다음 그 친구를 본사직영점 신입사원으로 취직시켜 조리 전 과정을 본인 직접 익히게 하고, 식당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체험하게 했다. 어느 정도 식당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익히면 친구의 상황에 맞는 업종을 세팅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려 한다.

창업엔 연습이 없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주최 제44회 프랜차이즈부산 행사가 지난달 2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관에서 열려 예비 창업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주최 제44회 프랜차이즈부산 행사가 지난달 2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관에서 열려 예비 창업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평생 월급쟁이로 일하다 창업 시장에 나와 성공하기란 무척 어렵다. 창업하기 전 성공 시나리오를 꿈꾸기보다 폐업 시나리오부터 써야 한다.

현재 창업하고자 하는 업종이 경쟁력이 있는지, 향후 시장의 트렌드는 얼마나 갈 것인지, 투자 리스크는 무엇이 있는지, 상권 내 매장을 위협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지속 가능한 나만의 무기는 무엇인지, 기회는 무엇이고 위협요인은 무엇인지 등 창업 이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안 좋은 시나리오를 먼저 써야 한다. 그 폐업 시나리오별 항목 중 극복 가능한 것이 70% 이상 될 때 창업을 고려할 만 하다.

누구나 실패를 생각하고 창업하지 않는다. 사업은 전쟁이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지뢰밭이 곳곳에 널려 있다. 나아가야 할 목적지도 명확하지 않고 장애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머릿속에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창업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창업은 연습이 없다. 실패하면 그게 곧 무덤이 된다. 20~30대의 실패는 병가지상사라 한다지만 40~50대, 특히 실버창업의 실패는 돌이킬 수가 없다. 중국에서 30년을 산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중국 최고 전문가는 자기처럼 중국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아닌 베이징 패키지여행 3박 4일 다녀온 사람이라고.

젊은 시절 용인 에버랜드 식음 부장을 몇 년간 한 적이 있다. 부임하기 전 에버랜드 식음 부분 매출은 십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비 오는 날 에버랜드 입장객은 500명이 되지 않은 반면 어린이날엔 12만명이 온다. 입장객 수에 따른 인력운영 시나리오가 없었고, 식음 업장 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젊은 시절 용인 에버랜드 식음 부장을 한 적 있다. 부임 전 에버랜드 식음 매출 부분은 십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체재시간에 따라 에버랜드 입장객의 연령별, 이용 패턴별로 식음 업장을 재배치하고, 동선을 고려하여 가판 매장도 재배치했더니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 사진은 크리스마스를 일주일여 앞둔 17일 오후 에버랜드 &#39;크리스마스 판타지&#39; 겨울축제. [뉴스1]

젊은 시절 용인 에버랜드 식음 부장을 한 적 있다. 부임 전 에버랜드 식음 매출 부분은 십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체재시간에 따라 에버랜드 입장객의 연령별, 이용 패턴별로 식음 업장을 재배치하고, 동선을 고려하여 가판 매장도 재배치했더니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 사진은 크리스마스를 일주일여 앞둔 17일 오후 에버랜드 &#39;크리스마스 판타지&#39; 겨울축제. [뉴스1]

도쿄 디즈니랜드 입장객의 체재시간은 7시간 30분이나 에버랜드는 5시간 30분이었다. 체재시간에 따라 식사 메뉴를 팔 것인지, 간식 메뉴를 팔 것인지가 결정된다. 체재시간이 짧은 에버랜드는 당연히 객단가가 높은 식사메뉴 중심 식당 배치가 우선되어야 했지만 2000원짜리 버터구이 오징어만 깔려 있어 식음 부분 매출이 항상 그대로였다.

또한 27도 전후에서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고 30도가 넘어서면 스노우 아이스가 많이 팔리는데도 10년 전의 가판매장을 그대로 배치해 매출을 높일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이용고객 연령별, 이용 패턴별로 식음 업장을 재배치했다. 이용객 동선을 예측하고 소화속도와 온도 등을 고려해 가판매장도 재배치했더니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

'시나리오 경영'으로 통제 불가능 변수 넘어라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다. 경영학에서 얘기하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시나리오 경영’을 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을 운영하든, 5평 내외 작은 매장을 운영하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폐업시나리오부터 쓰라고 얘기하고 싶다. 아이도 임신하지 않았는데 세계적인 석학으로 만드는 꿈을 꾸면 본인뿐 아니라 모두가 불행해진다.

국내 굴지의 외식 전문 기업인 C사가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내 한식당을 엄청난 비용을 들여 오픈했는데도 1년도 못 버티고 폐점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명함의 무게로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좋은 사례다. 대기업의 명함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그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성공하고 싶으면 폐업시나리오부터 쓰라.

이준혁 전 상지대 겸임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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