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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고시히카리 딱 세번 쥔다” 미쉐린 별 딴 주먹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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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형적인 변두리 정취의 도로, 어느 동네에도 있을 법한 버스 정류장 옆 식당이었다. 유명 관광지인 도쿄 아사쿠사(淺草) 센소지에서 불과 5분 거리였지만 흥청대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12월초 오니기리 전문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오키나와 아사쿠사 야도로쿠'를 찾은 손님들이 메뉴를 살펴보고 있다. 서승욱 특파원

12월초 오니기리 전문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오키나와 아사쿠사 야도로쿠'를 찾은 손님들이 메뉴를 살펴보고 있다. 서승욱 특파원

오니기리(おにぎり·일본식 주먹밥, 삼각김밥)전문점으론 처음으로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오니기리 아사쿠사 야도로쿠(宿六)’에 도착한 건 월요일이던 17일 낮 12시 20분쯤이었다.

12월초 오니기리 전문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오키나와 아사쿠사 야도로쿠'의 내부 모습. 오니기리를 만들고 있는 이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미우라 요스케. 서승욱 특파원

12월초 오니기리 전문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오키나와 아사쿠사 야도로쿠'의 내부 모습. 오니기리를 만들고 있는 이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미우라 요스케. 서승욱 특파원

“여기 이름쓰시고~ (한 시간 여 뒤인)1시 30분쯤 오시면 됩니다.”

[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 #'미쉐린 도쿄2019' 오니기리 전문점 첫 등재 #1954년 창업 아사쿠사 '오니기리 야도로쿠' #"막 지은 고시히카리에 단 세번만 쥔다" 비법 #"밥알 입에서 녹아" 1시간 기다린 손님들 탄성 #송로버섯,캐비어 주먹밥 등 진화와 변신 거듭 #일본 여행과 만화 붐 타고 유럽국가에도 수출 #프랑스 독일서 주먹밥 진화,日엔 없는 제품도

식당은 이달 초 발행된 ‘미쉐린 도쿄 2019’에서 ‘빕 그루망(Bib Gourmandㆍ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등급’에 선정됐다. 선정 사실이 알려진 뒤 평소보다 4~5배의 손님이 몰려들었다.

일본인에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섞여 오전 11시 30분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50m의 행렬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줄 서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순서대로 시간을 배정하는 방식을 고안했다고 한다.

한 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 먹어 본 ‘미쉐린 오니기리’의 맛은 매일 아침식사로 먹는 사무실 앞 편의점 주먹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옆자리의 여자 손님은 연신 “밥알이 입에서 녹는 것 같다”고 했다.

1954년 창업한 가게 안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원조 오니기리집’이란 글이 걸려있다.
오니기리를 만드는 젊은 주인 한 사람과 그를 돕는 직원 한 명, 카운터와 4인용 테이블 3개를 합쳐 채 20석이 안되는 식당은 단출하기 짝이 없다.

12월초 오니기리 전문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오키나와 아사쿠사 야도로쿠'의 주변 거리. 바로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서승욱 특파원

12월초 오니기리 전문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오키나와 아사쿠사 야도로쿠'의 주변 거리. 바로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서승욱 특파원

조부때부터의 가업을 이어받은 3대 점주 미우라 요스케(三浦洋介·39)가 일본 언론에 공개한 주먹밥 제조의 비결은 ‘되도록 손을 많이 대지 않는다’였다.

세부적으론 “반드시 솥에서 막 완성된 고시히카리(コシヒカリ) 쌀밥으로 만든다. 갓 지은 밥이라야 식더라도 푹신한 식감이 오랫동안 살아있다”, “밥 속에 재료를 넣은 뒤엔 ‘최소한의 힘’으로 딱 3번만 눌러 쥐어 모양을 만든다”, “주먹밥을 싸는 김은 한 쪽은 물기를 머금도록 촉촉하게, 다른 한 쪽은 물기 없이 바삭바삭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등이다.

밥을 싸고 있는 김의 식감은 두 종류다. 아래쪽에 날개처럼 펼쳐져 있는 쪽은 습기가 없는 바삭바삭한 식감, 위쪽에 삼각형으로 접혀있는 쪽은 촉촉한 느낌이다. 서승욱 특파원

밥을 싸고 있는 김의 식감은 두 종류다. 아래쪽에 날개처럼 펼쳐져 있는 쪽은 습기가 없는 바삭바삭한 식감, 위쪽에 삼각형으로 접혀있는 쪽은 촉촉한 느낌이다. 서승욱 특파원

플루트 연주가의 길을 걷던 미우라는 30세부터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음악지망생이었던 그를 식당으로 돌아오게 만든 ‘가업의 무게’와 미우라 집안의 손맛이 오니기리에 배어있으려니 생각했다.

17가지 재료 중 사케(鮭·연어)의 인기가 최고라지만 ‘맛있는 걸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미우라는 “(모두 맛있어) 따로 추천 상품은 없다”고만 했다. 사케와 곤부(미역), 오카카(가다랑어포)가 들어간 오니기리 세 종류에 된장국이 포함된 점심 세트가 950엔(약 9500원)이다.

‘일본식 주먹밥’으로 알려진 오니기리는 ‘오무스비(おむすび)’로도 불린다. 처음엔 묵은 밥 보존이나 비상 식량 확보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젠 편의점 진열대를 완전히 장악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간편식이 됐다.

이번 미쉐린 등재를 계기로 일본 내에선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간편식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실 오니기리는 그동안 일본 내에서도 변신과 진화를 거듭해왔다.

20일 찾은 도쿄역 내 오니기리 테이크아웃 전문점 ‘오무스비 햐쿠센(おむすび 百千)’의 한 쪽 벽엔 일본 전체 지도와 함께 47개 도도부현(광역단체)의 식재료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일본 47개 도도부현의 특산물을 재료로 60종류 이상의 다양한 오니기리를 파는 도쿄역 '오무스비 하쿠센'. 한쪽 벽면에 일본 지도와 지역별 특산물이 소개돼 있다. 서승욱 특파원

일본 47개 도도부현의 특산물을 재료로 60종류 이상의 다양한 오니기리를 파는 도쿄역 '오무스비 하쿠센'. 한쪽 벽면에 일본 지도와 지역별 특산물이 소개돼 있다. 서승욱 특파원

홋카이도(北海道)의 버터감자, 야마구치(山口)현의 콩고물, 지바(千葉)현의 메자시(めざし·정어리 등 생선 한 마리를 대꼬챙이를 꿰어 말린 것) 등 47개 도도부현의 특산 재료를 사용한 60종류 이상의 오니기리를 판매하는 곳이다.

일본 47개 도도부현의 특산물을 재료로 60종류 이상의 다양한 오니기리를 파는 도쿄역 '오무스비 하쿠센'의 진열대 모습. 서승욱 특파원

일본 47개 도도부현의 특산물을 재료로 60종류 이상의 다양한 오니기리를 파는 도쿄역 '오무스비 하쿠센'의 진열대 모습. 서승욱 특파원

도쿄엔 ‘명물 오니기리’도 늘고 있다. 치즈·베이컨·양파가 들어간 주먹밥을 철판에 튀겨 만든 고토(江東)구 식당의 오니기리, 긴자(銀座)의 프랑스 식당에서 4개 1200엔(약1만2000원)에 파는 고급 식재료 송로버섯 오니기리, 개 당 1500엔(1만5000원)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신주쿠(新宿)에서 인기몰이중인 캐비어 주먹밥 등이다. 최근엔 무게가 1kg에 달하는 대형 오니기리까지 등장했다.

‘일본오니기리협회’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어떤 식재료라도 오니기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세계 모든 나라에 쉽게 적응할 수 있어 샌드위치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간편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일본의 민영방송 TBS는 유럽 현지 취재를 통해 “독일과 프랑스의 수퍼마켓이나 레스토랑에는 일본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창작 주먹밥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47개 도도부현의 특산물을 재료로 60종류 이상의 다양한 오니기리를 파는 도쿄역 '오무스비 하쿠센'. 이 매장에서 파는 주먹밥 일부 상품들. 왼쪽부터 명란알, 낫토,오징어튀김, 새우튀김,정어리가 재료. 서승욱 특파원

일본 47개 도도부현의 특산물을 재료로 60종류 이상의 다양한 오니기리를 파는 도쿄역 '오무스비 하쿠센'. 이 매장에서 파는 주먹밥 일부 상품들. 왼쪽부터 명란알, 낫토,오징어튀김, 새우튀김,정어리가 재료. 서승욱 특파원

독일의 편의점에선 ‘아보카도와 고수 오니기리’, ‘호박과 참깨 오니기리’ 등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프랑스의 식당에서도 토마토와 치즈, 바질을 섞어 만든 오니기리 등 일본엔 없는 유럽풍의 럭셔리 주먹밥들이 많다. 이들 나라엔 집에 오니기리 제조기를 사들여 매일 제조 실험을 해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최근 폭발적으로 불고 있는 일본 여행 열풍, 전세계에 수많은 열성팬을 보유한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오니기리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 여행 중 오니기리를 먹어본 이들이 자국에 주먹밥을 전파하는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대표작인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처럼 오니기리가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뒤 이를 따라 먹게 된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찍이 샌드위치는 ‘카드게임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허기를 채울 수 있다’는 발상에서 태어나 간편식 분야에서 전세계를 석권했다. “샌드위치를 넘어서겠다”는 일본 주먹밥의 도전이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와쇼쿠' 레스토랑, 아시아에서 급성장

‘와쇼쿠(和食)’로 불리는 일식 레스토랑은 전세계에서 10년 만에 5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농림수산성의 집계에 따르면 2006년 2만4000여개에서 지난해엔 11만8000개 점포로 늘었다. 아시아에서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5년(4만5300개)에서 2017년(6만9300개)까지 2년 만에 50%가 늘었다. 4년 전인 2013년(2만7000개)과 비교하면 2.5배가 됐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일본 여행 경험자들이 본격적으로 와쇼쿠를 즐기게 됐기 때문”이라며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늘어난 중간층이 외국 음식을 자주 즐기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홍대 앞 한 일본음식점의 실내 풍경. 마치 일본의 어느 식당에 와 있는 것처럼 일본어로만 장식돼 있다. 김영주 기자

홍대 앞 한 일본음식점의 실내 풍경. 마치 일본의 어느 식당에 와 있는 것처럼 일본어로만 장식돼 있다. 김영주 기자

 중국의 경우 2015년 약 2만3000개에서 2017년 4만여 점포로 늘었다. 과거엔 스시·사시미·라면 등 각종 메뉴를 폭넓게 취급하는 레스토랑이 많았다면 최근엔 라면이나 장어 등 특정 음식의 전문점이 늘어난 게 특징이다.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한국은 일본 카레와 돈까스 전문점의 비율이 높다.
 그러나 아시아의 모든 도시에서 일본 식당이 늘고 있는 건 아니다. 태국의 방콕(1739개 점포)은 소폭(0.9%)이지만 전년과 비교해 줄어들었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서도 한식 레스토랑과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의외로 고전 중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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