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그들 "고맙다 윈스톰 … 일자리 돌려줘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이 자동차들이 잃었던 남편,아빠의 자리를 찾아줬네요. 내 자식 만큼이나 사랑스럽습니다."

GM대우의 인천 부평2공장의 생산관리2부에서 일하는 복직자 김영석(43)씨. 신차 생산 라인의 자재 담당인 그는 윈스톰과 토스카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2001년 2월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됐다가 지난 달까지 모두 복직한 1609명의 근로자 중 한 사람이다. 직장을 잃고 PC방 사업을 했다가 5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GM대우의 경영이 좋아지고 일자리와 예전의 가족생활을 되찾았으니 신차 윈스톰이 예뻐보일 수 밖에 없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복직 근로자 세 명을 만나봤다.

2001년 정리해고됐다가 지난 달 복직한 GM대우의 김범기·허봉관·김영석(사진 왼쪽부터)씨가 인천 부평공장에서 자신들이 생산공정에 참여하는 신차 윈스톰을 쓰다듬으며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월급 명세표 고이 간직=김씨는 복직 후 10일 처음 받은 월급 명세표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간직하고 다닌다. 그는 '가족 수당'이라는 항목을 보고 울컥했다 했다. 5년 전만 해도 어디 쳐박아 놨는지도 모를 월급 명세표가 가족을 지켜주는 신성한 부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첫 봉급 기념 회식은 '가정식 삼겹살'이었다. 외식을 하자는 김씨에게 아내는 " 예전처럼 집에서 아이들과 삼겹살 한 번 구워 먹자"고 했다. PC방 운영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바람에 가족이 모여 저녁밥 한끼 오손도손 함께 하기 쉽지 않았다.

김씨는 종업원을 '정리 해고'시킨 경험도 있다. PC방 과열로 장사가 어려운 와중에 석달 공들인 단골 손님을 3초의 불친절로 떠나보낸 직원을 그 자리에서 내보낸 것이다. 김씨는 " 내가 과연 회사에 보탬이 되게 살고 있는가를 자주 자문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웃음 되찾은 가족=차체2부의 김범기(38)씨는 해고된 직후 인천 연안부두의 물류 창고에서 월수 90만원짜리 막노동을 했다. 민주노총 활동 중에 만난 아내가 해고 한 달만에 첫 아들을 낳아 '분유 값'을 벌어야 했다. 이 때문에 "복직 투쟁을 하자"는 동료들을 뒤로 한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린다. 아내는 그가 복직하면서 받은 임시출입증과 월급 명세표를 코팅해서 보관한다. " 유치원생이 된 큰 아이가'아빠가 자동차를 만든다'며 친구에게 자랑하는 모습에 뿌듯합니다." 김씨는 과거 라노스와 매그너스 등을 만들던 라인에서 토스카.윈스톰 차체를 만든다. 그는 "이 녀석들이 날 복직 시켜줬다. 자식이 따로 없다"고 흐뭇해 했다.

◆남편 품어줘 감사=조립2부의 허봉관(38)씨 아내는 지난달 남편의 복직 소식에 회사에 편지를 썼다. "2001년 남편의 해고통지서를 받아들고 함께 많이 울었는데, GM대우가 결국 '남편을 버린 회사'가 아니라'다시 품어준 회사'가 돼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다. 허씨 부부는 해고 뒤 광주광역시에서 문구점을 했다. 두살배기 아이를 집에 재워 놓고 부부가 함께 일하러 나갔다가 혼자 깨어나 우는 바람에 옆집 신고를 받고 119 대원들이 출동하기도 했다.

부평=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