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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통령의 평행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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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1. 운전석에 오른 대통령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친환경 성장을 주창해온 대통령답게 수소연료전지차(FCEV)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장거리 해외 순방길의 피곤함도 잊은 듯 동승한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4대 친환경 자동차 강국이 될 것”이라며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2. 해외 순방 도중 수소연료전지차를 시승한 건 대통령의 의지였다. 시내에 있는 수소연료충전소에서 충전 시연도 참관했다. 대통령은 “도심 충전소에 주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수소경제에 대한 대통령의 믿음은 굳건해 보였다. 귀국 후 대통령은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니 믿어 달라”고 말했다.

#1의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12년 노르웨이에서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수소연료전지차 ‘투싼ix FCEV’를 시승했다. ‘저탄소 녹생성장’을 주창하던 이명박 정부는 15조원을 투자해 한국을 ‘4대 그린카-당시 친환경차를 일컫던 말-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2의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프랑스 현지에서 운행 중인 투싼 수소전기택시의 충전 시연을 참관하고, 2세대 수소전기차 ‘넥쏘’에 탑승해 파리 시내를 주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산업자원부 업무보고에서 “전기차·수소차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선 획기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데자뷔인지, 평행이론인지 모르겠지만 8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대통령의 행보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사실 ‘수소경제’의 창시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도 2005년 현대차의 시험용 수소전기차를 시승했고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노무현 정부의 ‘수소사회 원년’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거쳐 문재인 정부의 ‘플랫폼 경제’까지 왔다.

손에 잡힐 것 같던 ‘수소사회’는 여전히 신기루다. 미국 워즈오토는 최근 넥쏘의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올해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하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고 경탄했다. 13년간 기업은 달려왔는데 정부는 제자리다. 수소 업계에선 “대통령이 바뀌어도 에너지 관료는 이전 보고서만 베낀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남겨야 하는 건 기념사진이 아니라 실천이다. 이미 기업들은 하고 있다. 정부만 잘하면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안 하면- 된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