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다룬 무용공연 줄 잇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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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5공 청문회·핵·통일·매춘 등 최근 정치 및 사회적 주요 문제를 주제로 한 무용 공연이 잇달아 무용계에도 사회 참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현실 참여의 의미가 강한「민족 예술」은 이미 연극·미술 쪽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무용 쪽에서는 87년 이애주 씨의 이른바 시국춤이 일반에 강한 화제를 모으면서 급속히 부상해왔다.
오는 14∼15일 오후 7시30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발표회를 갖는 현대 무용가 박인숙 씨의 공연작품『잿빛 비망록』은 삼청 교육대·광주항쟁·언론 통폐합 등 5공청문회의 정치적 문제를 다룬 것.
87년 민족 춤패라 이름 붙여 창단한 디딤(대표 조기숙)은 한반도의 반전·반핵을 다룬 창작춤판 『내 사랑 한반도』를 13∼15일 오후 4시30분·7시30분 예술 극장 한마당에서 공연한다.
제2회 민족극 한바탕 초청 공연작인『내사랑…은 제1부「파멸이냐 생존이냐」, 제2부 「내 사랑 한반도」, 제3부「해방된 내 얼을 향하여」로 구성되어 관객들에게 무서운 핵의 피해, 엄청난 핵 위협 앞에 노출된 한반도의 실상을 정보로 알릴 것이라 한다.
디딤의 모체였던 춤패 불림(대표: 김미선)은 85년 창단되어 그 동안『불꽃으로 타올라』 『이 땅의 춤을 위하여』등 일련의 사회성장한 춤을 공연해왔다.
불림은 오는 28∼30일 오후 4시·7시 5월의 광주와 노동투쟁을 다룬 『5월 꽃』을 공연한다.
한편 최은희 씨(경성대 교수)는 오는 21일 오후 7시, 22일 오후 5시부터 경성대 콘서트 홀
에서 농촌 출신 소녀가 현대 사회 구조 속에서 여공으로, 몸을 파는 여성으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누이여, 나의 누이여 ! 』를 공연한다.
한국 무용의 강혜숙 씨 (청주대 교수)는 87년 12월 한국 교육 및 사회제도의 모순을 파헤친 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소년 9월 통일 문제를 다룬 살풀이 춤『통일 춤 한마당』을 발표한 후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해 12월 창립된 한국 민족예술인 총 연합 산하 민족 춤 위원회(위원장 채희완)가 오는 10월께 주최 할 민족 춤 페스티벌(가칭)로 한 전기를 맞을 것 같다.
사회적·정치적 주요 문제만을 주로 골라 창작작업을 해온 강혜숙 씨는『우리 현실의 문제를 다뤄 왜곡된 역사를 시정하는 것은 이 시대 무용가의 사명이고 춤이 해야할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관객들에게 예술가들이 던지고자하는 메시지가 강하고 확실한 무용 공연이 늘면서 무용계 일각에서는『주장만 난무하고 테크닉 등 예술성의 결여로 경직되어 관객에게 예술적 감흥을 주지 못하는 작품』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무용 평론가로 민족 춤 위원회에 속해있는 김채현 씨(서원대 교수)는『현실의 문제를 주제로 택했다고 해서 모두 민족 춤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진보적인 전망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한국 현실의 문제를 다루되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춤사위를 개발하고 기량을 갈고 닦은 진보적 전망을 가진 무용가의 춤이라야 바람직한 민족 춤이 된다는 것. 따라서 오는『가을의 민족 춤 페스티벌은 민족 춤의 개념 정립 등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박금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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