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위의 변화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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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4국
[제8보 (168~195)]
黑. 왕 위 李昌鎬 9단 | 白. 도전자 曺薰鉉 9단

태산은 요지부동의 상징이다.과거의 김인9단과 지금의 이창호9단은 큰 산처럼 버티고 앉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조훈현9단과 이세돌9단은 바람이다. 이 두 사람은 태풍이 되어 산을 덮고 바다를 흔든다.

이 판에서도 曺9단은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 판을 흔들었지만 李9단은 요지부동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전보에서도 검토실의 프로들이 감탄한 것은 흑은 지극히 평범한 수순을 밟았는데 그 수순이 오히려 백의 폐부를 찌르는 독수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흑이 ▲로 따냈을 때 강인하기 이를 데 없는 曺9단도 지친 기색을 보였다. 끝없는 패싸움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는데 다시 기약없는 패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단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 패싸움을 시작한다는 건 얼마나 팍팍하고 구차한 일인가.

168은 부분적인 맥점이다.170은 패싸움 때문에 노림을 포기한 수.

170으로 수를 낸다면 '참고도' 백1로 그냥 뻗어야 한다. 그러나 이건 백모양이 촉촉수 비슷해 흑이 6으로 잇기만 해도 싸움이 안될 것이다. 사실 흑은 패를 이길 생각은 없고 귀를 가일수해 안전만 확보하면 만족이다. 실전도 174 따내고 175로 지키는 수순으로 흘러갔다.

曺9단은 바쁘다. 아니 숨이 가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176만 해도 흑▲ 자리를 잇지 못한 채 중앙을 틀어막고 있다. 다 깨진 중앙이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틀어막지 않으면 다른 어디에 가서 집을 기대할 것인가.

190으로 이어 드디어 길고 긴 패싸움이 끝났다. 따지고 보면 백은 모든 패를 이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덧없는 느낌을 준다. 이 변화들이 李9단의 계산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패가 패착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179.190=▲, 182=174).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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